강신준 교수의 자본해설을 둘러싼 논쟁 비평(1)
- ‘성숙 변증법’은 자본주의 인정하는 사이비 변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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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실천>에서 나온 독일어판 자본론의 번역자로 알려진 강신준 교수가 2012년 8월부터 2013년 3월까지 경향신문에 자본론을 소개하는 연재 기사를 썼다. 이 연재기사가 나가고 한 달 뒤인 2012년 9월에 박찬식(정치학 박사)은 참세상에 “맑스와 <자본>에서 사회주의와 혁명을 거세하려는 악의적 시도: [기고] 맑스를 다시 죽이는 강신준 교수의 경향신문 <자본> 연재를 비판하며”를 써서 강신준 교수의 글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어서 2012년 10월에는 박승호(경제학 박사)가 참세상에 “마르크스의 가치론에 대한 잘못된 인식: [기고] 강신준의 ‘상품의 두 요소: 사용가치와 가치’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비판을 가했다.
그리고 김성구 교수는 강신준 교수가 연재를 마치고 나서 몇 개 월 뒤인 2013년 7월 미디어오늘에 “강신준 교수의 이상한 자본론 강의”라는 제목으로 강신준 교수의 자본 연재를 비판하고 나섰다. 김성구 교수의 비판에 대해 강신준 교수의 반비판이 있었고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서로 간에 논쟁이 있었다.
사실 <이론과 실천> 출판사에서 나온 자본론 번역자라는 권위를 가지고 있는 강신준 교수가 대중적 일간지에 자본론 연재기사를 쓴다는 것에 대해 호기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경향신문 연재기사는 연재 기간 내내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강신준 교수가 가지고 있었던 사상적 입장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레 자본론 자체의 해설에 대해서조차 별로 읽고 싶지 않은 ‘선입견’ 또는 ‘편견’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물론 이것은 역시 선입견과 편견이 아니었다.)
강신준 교수의 연재 기사 자체 보다는 오히려 이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박찬식, 박승호 두 박사의 연재 기사에 공감하면서 더 관심을 가지고 봤다. 박찬식 박사의 글에서는 변증법적 철학적 방법론을 가지고 강신준 교수를 비판하는 것을 흥미 있게 봤다. 박승호 박사의 글은 다루는 주제 자체가 더 어렵기는 하나 강신준 교수의 입장을 맑스주의 가치론을 가지고 비판하는 지점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강신준 교수와 김성구 교수 사이에 이어지는 공방 중 봉건제에서의 착취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제법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런데 그 보다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이 논쟁 과정에서 이어지는 이른바 ‘수정주의 교조주의 논쟁’이었다.(두 사람의 논쟁은 미디어오늘 [논쟁 마르크스 자본]을 보기 바란다.)
김성구 교수는 강신준 교수가 자본 해석을 둘러싼 학문적 논쟁을 “현재의 실천과 관련된 문제”와 수정주의 교조주의 문제로 둘러치며 자신이 제기한 “‘자본’ 곡해 여부”(맑스가 자본주의 개혁을 위해 자본을 발간했다고 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맑스의 문헌적 근거, 자본 제3권 제47장에서 맑스가 봉건제를 착취사회로 설명한 것이 틀렸는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만든 것이 맑스가 아니라 레닌과 볼셰비키인가? 등)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회피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처음에 수정주의 관점으로 자본을 해설한다고 강신준 교수를 비판하기는 했지만 김성구 교수가 집요하게 제기한 여러 쟁점들은 주로 강신준 교수가 맑스의 문헌적 근거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 김성구 교수의 비판에 대해 강신준 교수는 ‘대형유통업체의 횡포 문제,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사태에서 결여된 전술적 요소, 임금체계, 산별노조 등등’ 실천의 문제를 들고 나오고 교조주의 수정주의 논쟁으로 자본 해석의 문제를 둘러싼 쟁점을 이동시키려 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강신준 교수가 자본에 대한 과학적 해석을 요구하는 김성구 교수에 대해 어떤 식으로 대응하면서 문제의 쟁점을 회피하고 있는지 보자!
그런데 마르크스주의 진영 내에도 이런 딱지 붙이기가 언제부터인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보수진영의 예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것은 마르크스주의 진영에서 민주주의가 사라졌을 때 시작된 것이다. 바로 구 소련의 볼셰비키 독재체제 때부터였다. … 마지막의 사민주의라는 딱지는 김 교수가 볼셰비키의 관점을 가졌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만 가능한 일인데 명시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김 교수에게서 그런 그림자가 언뜻 보이기는 한다. 이들 볼셰비키가 바로 마르크스주의 진영 내에서 딱지놀이를 벌인 원조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관점은 구 소련이 왜 망했는지에 대한 설명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셰비키의 관점이 옳았다는 주장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이것은 나에게 딱지를 붙이기 전에 먼저 김 교수 자신이 방어적인 변론을 해야 할 부분일 것 같다. 혹시 다음 글에서 이 부분의 얘기를 좀 전개한다면 독자들에게(나도 포함하여)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강신준, 김성구 교수의 비판에 대한 두 번째 답글: [논쟁 마르크스 자본④] 강신준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생산적 논쟁을 위한 제안, 미디어 오늘 2013.8.13.)
강신준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당신이 애초에 나를 수정주의자라고 했는데 당신이야말로 교조주의자 아닌가? 그렇다면 ‘구 소련’ 독재체제가 왜 망했는지 설명하고 볼셰비키 관점이 과연 옳았는지 답변하라.’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강신준 교수가 이런 식으로 논쟁을 회피하려는 것에 답변하지 않고 맑스의 문헌적 근거를 바탕으로 엄밀하게 맑스주의를 해석하는 것을 주요 쟁점으로 삼으려 했던 김성구 교수의 태도는 그 자체만으로는 정당한 것이었다. 강신준 교수의 이러한 입장에 대해 김성구 교수는 “이런 이해방식은 중등학교의 반공교육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개탄하고 있다.
김영민이라는 필명으로 나온 1990년 5월 개역판 2쇄 역자 서문에서는 “당시 「자본」번역 출판이 단순히 좋은 책 한 권의 번역 출판에 그치지 않으리라는 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예상된 바였다. 그것은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억압되어 왔던 ‘사상의 자유’의 물꼬를 트는 일이었다.”며 엄혹한 정치적 억압 속에서 자본론을 번역했던 당시 상황을 감동적으로 전하고 있다.(김영민이라는 가명으로 1987년 9월에 발행된 이론과 실천 자본론 1권 초판 번역자는 김준 교수(성공회대 노동사연구소)이고 강신준 교수는 이론과 실천 자본론 2권과 3권의 번역자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강신준 교수는 6명이 나눠 번역한 1권 원고의 최종 점검과 교열도 자신이 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본론 개역판 번역이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억압되어 왔던 ‘사상의 자유’의 물꼬를 트는” 일이라는 역자 서문은 해방 이후 반공주의에 눌려 있던 한국에서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성과로 마침내 자본론이 공개적으로 출판된 현실을 비춰봤을 때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그런데 쏘련 붕괴 직전인 1990년 4월 개역판 서문에서 ‘반공이데올로기’를 언급했던 강신준은 쏘련 붕괴 뒤 20년이 넘은 2013년 지금 시점에서는 ‘볼셰비키 독재’ 운운하며 철저하게 반쏘반공주의에 물들어 있다. 한국사회 반공주의 금기를 뚫고 자본론을 번역했던 번역자가 ‘중등학교의 반공교육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전락한 현실이 오늘날 한국 운동진영, 진보 학계의 엄연한 현실이다.
김성구 교수가 맑스주의 문헌에 근거해서 자본 논쟁을 전개한 것은 토론의 목적상 필요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강신준 교수가 왜 자본을 그토록 왜곡 날조하게 됐는지 근본원인을 효과적으로 폭로할 수 없다. 김성구 교수는 토론을 물타기 하려는 의도였지만 실천영역을 무시하지 말고 제시하라는 강신준 교수의 집요한 요구에 대한 답변에서 민주노총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2000년)에 참여해서 ‘개혁과 변혁의 변증법’을 적용했다고 답변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에서 사회화와 이행의 경제학’, ‘사회화와 공공부문의 정치경제학’ 등 논문이나 저서이다. 그런데 김성구 교수의 사회화 주장은 변혁적 전망과 연결된 최소강령 요구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 문제를 회피하는 주장에 불과하다.
재벌을 사회화하는 전략적 방향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 재벌의 소유 집중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 현재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통제의 사회화를 넘어 소유의 사회화를 직접적으로 제기하는 대안이 요구된다. 즉 국유화를 통한 사회변혁이다.
이것은 현실 사회주의국가가 실패했던 지난 과거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데, 국유화 자체가 사회변혁으로 가는 충분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으로서 국가를 변화시켜 나갈 장기적 계획과 대중의 역동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 사회주의가 보여줬던 관료화되고 억압적인 국가권력의 모습이 국가권력의 민주화가 쉽지 않은 과제임을 상기시켜준다.... 결국 다시 국가권력의 문제로 되돌아온다. … 국가권력에 의해 바로 독점자본의 국유화로 나아가는 것이 수순인 것이다.(김성구, 탱자가 된 ‘경제민주화론’과 멈춰버린 ‘재벌의 사회화’: [주례토론회] 재벌개혁, 재벌타협? “재벌몰수가 정답”, 참세상, 2013.10.14)
김성구 교수가 국가권력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이 문제에 대해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권력의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것은 독점자본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이를 비호하는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그대로 둔 채 독점자본을 몰수하고 사회화(사회주의에서 그것의 주요한 형태인 국유화)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아니 이것이야말로 주장을 넘어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변혁적인 원칙이다. 김성구 교수가 국유화를 통한 사회변혁을 말할 때 그 국가의 성격은 무엇인자? 자본주의 국가인가? 이행기의 이중권력 시기 여전히 버티고 있는 자본의 국가인가? 아니면 정치혁명에 의한 사회주의 국가인가? 국유화를 통한 사회변혁이라는 말은 교묘하게 정치혁명의 문제를 뒤로 돌리고 국유화에 있어서 그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회피하는 주장이다.
김성구 교수의 이러한 애매한 태도 역시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왜곡된 이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타파하는 정치권력과 이 권력을 통한 독점자본 몰수와 사회화라는 변혁 경로 자체를 회의하고 회피하게 만드는 것이 현실 사회주의 실패를 성찰한다는 것인가? 이에 따라 김성구 교수는 자본론 해석 논쟁에서는 수정주의적 태도를 비판하고 변혁을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변혁적 실천 전망 앞에서는 ‘국가를 변화시켜 나갈 장기적 계획과 대중의 역동성’이라는 주장으로 강 교수와 유사한 ‘성숙’과 ‘점진주의’에 빠졌던 것이다.
결국 논쟁을 회피하기 위해 제시한 강신준 교수의 주장이야말로 역설적으로 강신준 교수의 정치적 수정주의와 자본왜곡을 더 효과적으로 폭로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데도 김성구 교수는 정치적 한계로 인해 근본적으로 답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강신준 교수는 또한 김성구 교수의 이러한 정치적 약점을 알기 때문에 토론 쟁점에서 볼셰비키와 쏘련 사회주의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로 논쟁을 효과적으로 회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맑스주의와 맑스주의의 정수가 담겨 있는 자본론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쏘련과 현실 사회주의를 올바로 바라보는데 있어서 필수적이다. 반대로 과거에 대한 왜곡과 비방은 단지 흘러간 과거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를 넘어서 자본론과 그것에 바탕을 둔 과학적인 현실 이해조차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이 글에서 강신준 교수의 자본론에 대한 수정주의적 해석을 그 자체로 비판하고 쏘련이 볼셰비키 독재체제였다는 강신준 교수의 사고가 어떻게 맑스주의를 왜곡시키고 혁명과 과학의 보고인 자본론을 왜곡 날조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가도록 했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그 지적 뿌리가 바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배신자’였던 카우츠키 사상이었음을 밝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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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자본 해설에서 강신준 교수는 “자본주의 개혁은 자본주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그대로 존속시키면서 그 위에 건설된다는 말입니다.”라고 주장한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역사발전에 대해서도 봉건제를 타파하여 없애는 것이 아니라 봉건제의 토대 위에서 자본주의가 성장하며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신준 교수는 이를 1+1=2라고 해서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는 성숙 과정을 통해서 사회가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야지만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기존 체제인 1을 없애버리면 새롭게 추가되는 것은 1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과거는 현재와 단절되어서는 안 되고 현재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맑스주의 변증법을 1+1의 점진적인 양적발전의 과정으로만 묘사하고 급격한 질적 비약, 단절이라는 혁명적 이행은 말하지 않는 점에 대해 앞서서 수정주의 비판이 제기됐던 것이다. 여기서는 유기체의 성장 과정에 빗대 한 사회의 변화를 ‘성숙’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강신준 교수의 입장을 비판할 것이다.
변증법으로 파악되는 유기체의 성숙은 인간의 의지에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의지도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려는 의지가 없다면 아예 대학을 가기 위한 준비를 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 의지는 자연적 성숙과정에 종속된 것입니다.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를 아무리 보고 싶어도 10개월을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성숙과정은 인간의 의지로 극복할 수 없습니다. …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실패도, 중국과 소연방의 자본주의로의 회귀도 모두 이 때문입니다. … 즉 자본주의 이전의 봉건사회는 자본주의에 의해 타파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토대인 것입니다. 앞의 예에서 본다면 고등학생이 대학생으로 자란 것이지요. 이 말뜻을 살짝 연장하면 자본주의의 변혁 과제는 자본주의를 타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보다 성숙하게 만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변증법이 일러주는 교훈인 것입니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첫 번째 본질입니다. … 과거는 결코 갈아엎듯이 없앨 수 없으며 언제나 현재의 발목을 잡고 있는 토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세상을 “확 바꾸는” 그런 변화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당장의 견디기 힘든 현실을 생각하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쩌겠습니까, 이것이 진리인 것을요.(강신준, [오늘 ‘자본’을 읽다]I. 프롤로그 (3) 서문 : 유물론과 추상화, <자본>의 구조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숙해야, 그것을 뛰어넘는 혁명도 성공, 경향신문, 2012.9.7)
맑스는 자본론 1권 제32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에서 변증법적 부정의 방법을 서술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는 소유자 자신의 노동에 입각한 개인적 사적 소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부정인데 여기서 자본주의는 대규모 생산이라는 자본주의적 소유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를 또 다시 부정하는 것을 부정의 부정이라고 설명한다. 이 부정의 부정은 자본주의 시대의 성과인 협업과 토지와 생산수단의 공동점유에 입각한 사회적 생산방식을 그대로 계승하지만 그 성과와 이익을 자본가들이 독차지하는 사적소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변증법적 부정은 전면 부정, 무익한 부정이 아니라 한 사회의 성과를 그대로 계승하되 그것의 착취적 성격을 부정하고 더 높은 소유형태로 나아가는 것이다.
강신준은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자라는 한 사람의 변화와 성숙이 변증법적 발전의 예라고 들고 있다. 산고를 통해 한 인간의 생명이 탄생하는 것은 비약적 발전이다. 죽음이라는 유기체의 소멸도 비약이다. 물론 이 죽음은 개인적으로는 소멸의 과정이지만 전체 사회적으로는 새로운 생명이 다시 탄생하고 이전에 죽어간 인간들이 모여 만든 사회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삶을 영위하기 때문에 발전인 것이다. 그런데 강신준은 고등학생이 대학생으로 성숙해가며 발전하는 살아 있는 임의의 한 과정 동안 한 인간의 변증법적 발전과 자본주의라는 질적으로 서로 다른 대상에 대해 변증법을 지극히 형식주의적으로 적용한다.
인간의 변증법적 발전에서 생명을 영위해 가는 특정한 시기의 한 명의 인간은 과거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변화했지만 다른 인간으로 교체된 것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도 자신의 고유한 본질을 유지한다. 어제의 나에 비해 변화된 내가 됐지만 그렇다고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내가 아닌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엥겔스는 ‘공상에서 과학으로’에서 어떤 생물체도 주어진 한 순간을 보면 항상 동일한 것이면서도 동일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엥겔스는 유기체는 어느 정도 긴 순간이 경과하면 이 유기체의 물질은 완전히 갱신되어 다른 물질로 교체된다고 말하고 있다.
사회라는 대상의 변증법적 발전에서의 변화 발전은 양적변화와 질적 변화를 거치면서 비약을 통해 다른 사회구성체로 이행한다. 강신준은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의 발전을 ‘성숙’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이 말뜻을 살짝 연장하”여 “자본주의의 변혁 과제는 자본주의를 타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보다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강신준의 살짝 연장은 이것을 사회 발전에 형식적으로 그대로 적용하고 나서는 살짝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강신준은 특정한 시기의 인간이 변화발전 하더라도 그 대상은 변하지 않고 바로 그 사람이라는 한 인간에 대한 변증법 적용을 다른 대상인 사회에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연속성을 강조한다. 완만한 변화의 개념으로 성숙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 발전도 자본주의에 의해 마침내 타파되어 완전히 새로운 질을 가진 사회로 이행한 것이 아니라 완만한 성숙 과정을 거쳐 봉건제의 토대 위에서 이행 없이 건설된 것으로 간주한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 있어서도 생산력의 점진적이고 점차적인 성숙 과정이 양적으로 축적되면 변혁이 달성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조급하게 또는 인간의 의지만으로 이러한 성숙 법칙을 어기면 결국 사단이 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결국 러시아가 미성숙한 상태에서 사회 발전 법칙을 어기고 인위적으로 혁명을 일으켰기 때문에 망했으니 이를 통해 때가 올 때까지 완만한 자본주의의 성숙 과정을 기다려야 한다는 수정주의 입장에 이르게 된 것이다. 나중에 상세하게 검토하겠지만 쏘련 사회주의에 대한 강신준식 인식이 맑스주의 변증법에서 비약과 소멸과 재탄생이라는 혁명성을 거세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맑스는 앞에서 말한 부정의 부정을 설명하기 직전에 질적 비약과 급격한 단절을 통한 혁명적 이행을 말한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조종이 울리고 “수탈자가 수탈당한다.”는 유명한 문장이다. 자본주의는 생산의 사회화를 낳지만 이 결과물을 한 줌도 안 되는 자본가들이 독차지 하고 압도적 다수의 노동자 민중들은 이로 인해 빈곤, 억압, 예속, 타락, 착취를 당하기 때문에 훈련되고 통일되며 조직되는 노동자 계급이 반항과 저항을 통해 자본주의적 외피 즉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타파하는 것이다.
수탈자가 수탈당하는 과정은 가장 격렬한 계급투쟁의 과정이다. 기존 지배계급이 자신이 가진 모든 권력과 부와 행복의 원천인 사적소유권이 노동자 민중들에 의해 수탈당하게 될 때 가만히 앉아서 당할리가 없다. 수탈자가 수탈당하는 과정은 바로 격렬한 이행의 과정이고 여기에 강신준이 필사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려고 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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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준 교수는 맑스가 자본론 1권 ‘노동일’ 부분에서 서술한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설명에서도 사이비 변증법인 ‘성숙 변증법’의 방법을 그대로 사용한다.
자본주의는 바로 이 두 사람 사이의 관계, 즉 사회적 관계를 토대로 하는 제도인 것입니다. 사회적 관계는 상대방 없이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의존성 때문에 그것은 결코 일방적인 형태로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장시간 노동은 필연적으로 하나의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내는데 그것을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합니다. … 오늘날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는 표준노동일은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런 노동자의 주장이 자본주의의 상품교환 법칙과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시간 노동은 자본주의의 본질이지만 동시에 자본주의의 본질과 충돌하고 따라서 바로 자본주의적 관계 자신에 의해 규제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를 성숙한 방향으로 밀고나가는 것이 곧 혁명의 성공 방향이라는 마르크스의 교훈이 여기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마르크스는 사회적 관계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것임을 알려줍니다. … 자본주의의 자연적 한계는 인위적인 노력에 의해서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위적인 노력은 바로 자본주의의 상품교환 법칙, 즉 노동력의 매매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변증법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자본주의의 극복이 자본주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디딤돌로 삼는 것이라는 변증법의 교훈 말입니다.(강신준, [오늘 ‘자본’을 읽다]II. 제1권 : (7)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경향신문, 2012.10.26)
자본주의에서 노동자가 노동력을 판매하고 자본가가 노동력을 구매하는 과정은 상품 유통 시장에서 상호 대등하게 거래하는 과정이다. 물론 현실에서 자본가는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고 엄청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다. 반면 노동자가 가진 것은 노동력 밖에 없기 때문에 개인으로서의 노동자는 일방적으로 종속적 위치에 있다.
자본은 유통영역에서 구매한 노동력을 생산영역에서 소비하면서 자신이 구입한 노동력 비용 이상으로 노동력을 사용하려 한다. 이것을 우리는 자본가의 노동자에 대한 착취라고 한다. 자본가들은 노동시간을 최대한 연장하고 노동강도를 높여서 가능한 한 최대한의 착취를 하고 이를 통해 이윤을 높이려고 골몰한다. 노동자는 반대로 자본의 착취를 제한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며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더 받기 위해 투쟁한다.
노동자의 노동력을 구매해서 소비할 자본가의 권리와 노동력의 재생산비를 제대로 받기 위한 권리는 서로 충돌한다. 맑스는 이처럼 서로 간의 권리가 충돌할 때는 힘이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라고 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자본가가 노동일을 연장하여 장시간 노동을 시키는 착취 강화 시도에 맞서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오랫동안 투쟁해 왔다. 이러한 노동자의 투쟁의 성과로 인해 법적으로 표준노동시간이 제정되었다. 그런데 강신준은 여기서도 “자본주의 극복이 자본주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디딤돌로 삼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이 자본주의 본질이면서도 자본주의 본질과 충돌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관계 자신에 의해 규제될 수밖에 없다는 강신준의 말은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자들의 격렬한 계급투쟁으로 대공업 내에서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지자 이 부문의 자본가들이 표준노동일을 제정하도록 함으로써 다른 산업의 자본가들이 자신들과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역시 자본주의적 관계 자신에 의해 노동시간이 규제됐다고 보기 보다는 노동자들의 격렬한 계급투쟁의 결과물인 것이다. 강신준이 말하는 자본주의적 관계는 자본주의 법칙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법칙은 여전히 노동시간을 연장하고 착취를 강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노동자가 죽든 말든 노동력이 상하든 말든 산재와 직업병으로 죽어가든 말든 이윤추구 법칙에 의해 잉여노동에 대한 무제한적인 착취욕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적 관계 자체가 한편으로는 노동시간 단축을 하도록 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성숙한 방향으로 밀고나가는 것이 곧 혁명의 성공 방향”이라고 강신준은 주장하는데 자본가들이 스스로 노동시간을 단축시키도록 하는 상황은 무엇이 있는가?
먼저 노예 소유자의 예를 들어보면 그는 자신의 소유물인 노예를 잃어버리면 자신의 재산을 탕진한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노예 소유자가 아무리 냉혹하다 하더라도 최소한 노예의 생육조건을 유지시켜줘야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원리에 의해 자본가들이 노동력을 소모시키면 소모된 노동력의 재생산을 비용을 증가시켜줄 것인가? 맑스는 이렇게 묻는다.
“그러므로 자본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표준노동일을 제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다.”(칼 맑스, <<자본론>>, 1권 상 제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10장 노동일, 비봉출판사, 제2개역판, p.355)
그러나 맑스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노예를 보호하는 것이 노예소유자의 이익과 합치되는 한, 노예를 인간적으로 취급하지만 노예무역이 실시됨에 따라 경제적 타산은 노예를 가장 무자비하게 혹사시키는 원인으로 된다. 왜냐하면, 노예를 외국의 흑인사육장으로부터 값싸게 보충할 수 있게 되자, 노예의 수명은 그의 생존시의 생산성보다 덜 중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예 수입국의 노예 관리의 원칙은, 노예로부터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노동을 짜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경제적 타산이라는 것이다.(케언즈(J.E.Cairnes), <<노예의 힘>>, pp. 110-111의 내용을 칼 맑스가 <<자본론>> 제 1권 제 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 10장 노동일, 비봉출판사, p.356에서 인용함.)
자본주의 국가는 청년 실업자들이 즐비한데도 불구하고 노동력 부족을 호소하면서 출산 장려를 통해 충분한 예비 착취자들을 항상적으로 공급할 조건을 마련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안정 노동자 대열로 상대적 과잉인구의 한 형태이다. 박근혜 정권은 고용률 70% 운운하지만 그 대다수가 계약직 형태의 반(半)실업자라는 사실을 은폐하고 자본을 위해 오히려 그러한 고용형태를 촉진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상대적 과잉인구의 존재 때문에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노동력의 보존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 자본은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가혹하게 혹사하여 노동력이 조기에 훼손당한다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저임금과 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취업을 기다리는 예비노동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자신이 구매한 노동력의 훼손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청년 실업자 대열과 심지어는 ‘외국의 흑인사육장’처럼, 이주노동자를 합법적 체류기간인 4년 10개월 동안 착취하다가 내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착취기간인 4년 10개월 동안 착취하고 비자 만료로 자국으로 돌려보낸 뒤 ‘성실근로자제도’를 통해 ‘성실성’을 입증하면 다시 이주노동자를 불러들여 4년 10개월을 연장하기도 한다. 합법적 체류 기간 동안에 조금이라도 저항하면 불성실근로자로 찍혀 버린다.
이주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성숙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성숙의 경제적 결과로써 초과착취도 모자라 자유롭게 노동력을 판매할 법적권리인 사업장 이동의 자유도 박탈당하며 신분적 예속까지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표준노동일을 제정하는 투쟁은 노동자가 그 투쟁을 통해 단결력을 강화하고 투쟁의 성과로 자신의 노동력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단축된 노동시간으로 지적능력을 발전시킴으로써 새로운 사회를 준비해가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맑스는 자본론 1권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표준노동일 동안 수행된 노동도 그 가치 이하로 지불되고 있으며, 따라서 시간외 노동이라는 것은 더 많은 잉여노동을 짜내기 위한 자본가의 책략에 불과하다. 그리고 또 이 사실은 비록 표준노동일 동안 사용되는 노동력이 현실적으로 그 가치대로 지불되는 경우일지라도 다를 것이 없다.”(칼 맑스, <<자본론>> 제 1권 제 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 10장 노동일, 비봉출판사, 제2개역판, 각주 40, p.328)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유지한 채 벌어지는 노동시간 단축 투쟁은 임금인상 투쟁과 마찬가지로 착취를 제한하는 운동이지 착취 관계 자체를 없애는 투쟁이 아니다. 맑스가 말한 것처럼 오늘날에도 자본은 노동자들의 투쟁의 성과인 노동일의 법적 제한을 무너뜨리기 위해 잔업이니 시간외 근무니 특근이니 하면서 교묘하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자본은 기본급 비중을 낮추고 각종 수당이나 상여금 등으로 ‘책략’을 써서 노동자가 장시간 노동에 자발적으로 나서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노동력이 그 가치 이하대로 지불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가치대로 지불된다고 하더라도 착취라는 현실은 변함없는 것이다.
강신준은 장시간 노동이 자본주의 본질이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본질과 충돌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본질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이다. 봉건제에서 농민들이나 수공업자 같은 직접 생산자들은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노동력을 판매하는 노동자가 되었다.
강신준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체제에서 이윤추구 법칙 때문에 벌어지는 여러 현상들 중의 하나인 장시간 노동을, 자본주의의 본질로 봐서 이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는 것이 자본주의를 성숙한 방향으로 밀고나가는 것이고 이것이 곧 혁명의 성공 방향이라고 하고 있다. 강신준은 여기서 ‘혁명’이라는 단어를 사실상 처음으로 말했지만, 그것이 자본주의 사적 소유 생산관계를 철폐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관계 자신에 의해’ 스스로 ‘규제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착취를 제한하기 위한 노동시간 단축투쟁은 ‘계급투쟁’이다. 강신준도 타인(자본가)이 노동자를 착취해서 누리는 여유시간을 되찾아서 노동자의 여유시간으로 만드는 ‘계급투쟁’을 인정한다. 그러나 한 줌도 안 되는 자본가들이 절대 다수의 노동자와 민중들을 억압, 착취, 수탈하며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송두리째 압살하는, 그리고 참상 위에서 엄청난 부와 권력을 누리며 전체 사회를 지배하는 계급 착취 관계를 철폐해야 한다.
계급투쟁은 착취를 제한하는 것을 넘어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계급 관계를 철폐하여 계급 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레닌의 말처럼 계급투쟁을 인정하더라도 수탈자를 수탈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맑스주의자가 아니다.
강신준 교수의 자본 해설을 둘러싼 논쟁 비평(2)
- 임금에 대한 반맑스주의적 해석
“사상이 없는 곳에는 사상을 대신해 말이 판을 친다”
1
장시간 노동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감으로써 자본가가 무상으로 가져가는 잉여노동을 줄이고 자본주의를 성숙시키는 것이 변혁의 성공 방향이라고 하는 강신준 교수의 태도는 임금 문제를 다루는 데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사실 임금은 투하되는 자본의 일부분이며 가치의 분배와는 무관합니다. 임금이 생산영역인 제1권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고 나면 최근 대선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마르크스의 관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에서 경제양극화의 모순은 사전에 결정된 임금과 사후에 만들어지는 잉여가치의 격차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며 이것은 분배영역이 아니라 생산영역에서 그 처방을 찾아야 합니다. 정해진 임금 이상으로 과도하게 잉여가치가 ‘생산’된 것이 바로 격차의 주범이니까요.(강신준 | 동아대 교수·경제학, 오늘 ‘자본’을 읽다]II. 제1권 : (12) 임금, 경향신문, 2012-11-30)
강신준 교수는 역시 단지 애초에 정해진 노동력의 재생산비 즉 임금에 비해 자본가들이 차지하는 잉여가치가 ‘과도하게’ ‘생산’되어 격차 즉 양극화를 낳은 것이 문제라고 한다. 그렇다면 과도하게 벌어진 잉여가치와 임금의 차이를 좁히는 것, 즉 점진적으로 임금인상을 추구하여 양극화를 좁히는 것이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근본적인 변혁의 방향이 되는 것이다. 강신준 교수는 이것이 바로 경제민주화에 대한 맑스의 관점이라고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있다.
오늘날 경제민주화는 독점자본(재벌)의 생산과 사회 전체에 대한 지배(이것을 횡포라고들 한다.)로 인해 발생하는 대중적인 불만을 억누르고 분노가 터져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부르주아 정치권과 소부르주아들이 내걸고 있는 구호다. 이 구호는 독점자본의 사회 지배를 은폐하는 수단에 불과하며 독점자본의 독점을 전혀 약화시키지 못한다. 실제 박근혜 정권 역시 경제민주화 구호를 내걸었으나 집권 이후 재벌의 요구에 맞춰 반노동자적이고 반민중적 행보를 함으로써 경제민주화 요구가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강신준 교수의 주장과 달리 맑스는 양극화에 대해 뭐라고 했는가? 맑스는 양극화라는 표현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자본론에서 이와 관련한 유명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모든 방법은 동시에 축적(蓄積)의 방법이며, 그리고 축적의 모든 확대는 다시 이 방법을 발전시키는 수단으로 된다. 이로부터 자본이 축적됨에 따라 노동자의 상태는 [그가 받는 임금이 많든 적든] 악화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끝으로 상대적 과잉인구(相對的 過剩人口) 또는 산업예비군을 언제나 축적(蓄積)의 규모 및 활력에 알맞도록 유지한다는 법칙은 헤파이스토스〚Hephaestos: 불과 대장일의 신〛의 쐐기가 프로메테우스를 바위에 결박시킨 것보다도 더 단단하게 노동자를 자본에 결박시킨다. 이 법칙은 자본의 축적에 대응한 빈곤(貧困)의 축적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든다. 따라서 한 쪽 끝의 부(富)의 축적은 동시에 반대 편 끝[즉 자기 자신의 생산물을 자본으로 생산하는 노동자계급의 측]의 빈궁 · 노동의 고통 · 노예상태 · 무지 · 야만화 · 도덕적 타락의 축적이다.(맑스, 자본론 Ⅰ[하], 제7편 자본의 축적과정 제25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2008년 2월 25일, 881쪽)
이것이 이른바 맑스주의와 맑스주의의 적대자들이 논쟁을 하며 ‘궁핍화 테제’라고 이름을 붙인 것으로 여기에는 맑스의 과학적, 변혁적 사상의 정수가 담겨 있다. 맑스는 자본이 잉여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동시간 증대, 노동강도 강화, 생산성 향상 등 모든 방법이 자본축적 방법이며, 역으로 자본축적 확대를 통해 이러한 방법들을 더욱 더 발전시켜나간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축적은 노동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주기적인 과잉생산 공황을 낳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하고 있다. 따라서 자본축적 과정은 자본주의 모순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노동자들을 실업상태로 내몰며 상대적, 절대적으로 점점 더 빈궁으로 몰아넣고, 노동의 고통에 시달리고 노예상태로 빠져들 수밖에 없도록 한다. 자본 축적이 진전되면서 자본의 부와 권력이 강화되면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의 억압과 지배력도 강화되고 노동자들은 점점 더 자본에 종속되어 독자성과 자주성을 상실하게 되기도 한다.
자본이 자본으로서의 지배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 강화하도록 하고, 반면에 노동자는 임금 노예로서의 종속적 관계로 살아가도록 하는, 지배와 예속관계의 원천은 자본의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권이다. 자본주의 국가권력은 물리적 폭력을 중심으로 해서 자본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착취와 지배관계를 유지, 강화하도록 한다.
맑스는 이러한 자본축적은 노동자들을 노예상태와 무지, 심지어 도덕적 타락으로 몰아넣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을 분노, 각성하게 하고 투쟁으로 떨쳐 일어나도록 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자본주의 국가가 자본주의 착취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폭력적 물리력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과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비호하고 있는 국가권력과의 대결이 없다면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투쟁은 불가능하게 된다.
강신준 교수 주장과 전혀 다르게 맑스는 노동자가 받는 임금이 많든 적든 노동자의 상태는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말은 노동자가 받는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아져서 설혹 ‘정해진 임금’ 이하로 과소하게 잉여가치가 생산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노동자의 상태는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맑스는 이처럼 단순하게 임금과 잉여가치의 격차를 좁히는 것을 넘어서 자본주의 생산관계 자체가 노동자를 노예로 만들고 고통과 가난, 억압과 착취를 강화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강신준은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으로 착취의 제한과 규제를 말하면서 맑스주의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착취제도 자체의 철폐가 자본론을 통해서, 더 나아가 맑스의 저작 전반에 걸쳐서 맑스 사상의 핵심 원칙인 것이다. 이것은 또한 현대자본주의에서 자본 독점을 은폐하고 기만하고 있는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독점자본주의의 사회 지배 자체의 철폐가 맑스주의의 변혁적 사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강신준은 생산영역에서 경제양극화의 모순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뒤에서 더 살펴보겠지만, 실은 교환영역, 분배영역에서 모순을 발견하고 그 해결 방안을 그 틀 내로 한정함으로써 맑스주의를 왜곡날조하고 변혁성을 거세하려고 시도한다.
2
강신준 교수는 이제 또 다시 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는 임금 이상으로 지출되는 노동, 즉 잉여가치의 존재와 크기에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임금과 잉여가치로 분할되는 비율 즉 노동소득분배율을 개선하면 잉여가치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해방의 지렛대가 확보된다고 하고 있다.
사실 앞서 노동시간의 분할에서 얘기했듯이 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는 생계비인 임금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임금 이상으로 지출되는 노동, 즉 잉여가치의 존재와 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임금은 총노동을 기준으로 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총노동이 임금과 잉여가치로 분할되는 비율(노동소득분배율이라고 합니다)을 임금을 통해 알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이 잉여가치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지렛대가 확보되는 것입니다.(강신준, 같은 기사)
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가 잉여가치의 ‘존재’에 있다는 것과 잉여가치의 ‘크기’에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잉여가치의 ‘존재’가 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라면 잉여가치의 ‘존재’ 자체를 없애는 투쟁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잉여가치의 ‘크기’가 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라고 본다면 잉여가치의 ‘크기’를 줄이는 투쟁을 전개하면 된다. 전자의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를 철폐하는 투쟁이고, 후자의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임금인상 투쟁’이다. 강신준은 이렇게 성질이 다른 두 문제를 동급으로 취급하면서 스스로는 후자의 문제만을 다루고 있다. 그것도 성과급제라는 굉장히 왜곡된 방식으로. 이 문제는 뒤에 좀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자본주의의 대변자들은 이윤을 침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임금과 관련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유포해 왔다. 그 핵심은 임금이 노동의 대가라고 함으로써 마치 노동자가 일한 결과를 다 받는 것으로 왜곡하여 자본의 착취를 은폐하는 것이다. 그러나 맑스는 사실은 임금이 노동자와 그 가족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데 들어가는 생활수단의 가치로 구성되는 노동력의 대가로 결정된다는 것을 밝혔다. 이를 통해 맑스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의 결과물 중 일부만을 받고 나머지는 자본가가 잉여가치로 가져간다는 것을 밝혔다. 또한 자본주의 대변자들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은 필연적으로 생산품들의 가격인상을 낳기 때문에 임금인상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서도 맑스는 노동자의 임금인상이 노동자들이 주로 소비하는 생활필수품에 대한 소비 증가로 이어지면서 가격을 일시적으로 높인다면, 마찬가지로 가격상승에 따르는 상품 생산의 증대를 가져오면서 물가를 종전대로 되돌리거나 낮추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맑스는 노동력의 재생산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한 사회의 사회, 역사, 문화적 발전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고 있다. 자본은 이윤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에게 최대한 많이 일을 시키고 최소한의 임금을 주려하기 때문에 결국 임금수준은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단결하여 어떻게 자본가에게 맞서 싸우느냐에 달려 있다. 노동자들은 자본가와의 치열한 계급투쟁을 통해서 임금을 높여나가서 노동자의 삶의 수준을 높여나가야 한다. 또한 이러한 투쟁의 과정 속에서 단결력과 계급의식, 계급적 자신감을 높여나가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임금인상 투쟁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임금인상 투쟁 그 자체에 대한 과도한 환상과 기대는 노동자에게 대단히 해로운 것이다. 가장 먼저 자본주의 내에서 임금인상만으로 자본주의 모순을 제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말살시킨다. 그리고 실제로 임금인상 투쟁은 자본의 착취증대를 통한 이윤추구를 일시적으로 막거나, 제어할 수는 있어도 이윤증대 경향을 완전히 멈추게 할 수는 없고, 자본주의 착취 체제 자체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자의 착취를 강화하여 임금을 삭감시키고 노동자의 상태를 악화시켜 자본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 맑스는 여러 차례 그것을 강조한다.
노동자들이 노동일을 이전의 합리적인 크기로 되돌리기 위하여 투쟁하거나, 또는 -표준 노동일 법을 제정케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임금을 비단 그들에게서 짜내는 추가적 시간에 비례하는 정도로 올리고 또 그 이상으로 올리게 함으로써 과도의 노동을 방지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들은 자기의 의무를 수행할 따름이다. 그들은 오직 자본의 포악한 약탈을 제한할 따름이다. … 그런데 현대 산업의 전 역사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자본은 만일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맹혹하고도 무자비하게 전체 노동계급을 이러한 극도의 악화상태에 떨어뜨리려고 애쓸 것이다.(맑스, 임금, 가격 및 이윤, 경제학 노트, 김호균 옮김, 이론과실천, 1988, 249쪽)
임금을 노동 강도의 증대에 상응하여 올리기 위해 투쟁함으로써 자본의 이 경향을 억제하는 노동자는 오직 자신의 노동의 가치 감소와 자기 후세들의 악화상태에 반대하여 투쟁하는 것일 따름이다.(같은 책, 250쪽)
이상 몇 개의 지적으로써도 근대산업의 발전은 더욱 더 자본가에게 유리하게 되고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의 일반적 경향은 임금의 평균 수준의 제고가 아니라 그 저하를 가져온다는 것, 즉 노동의 가치(노동력의 가치)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 최저한계까지 인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현 제도 하에서 사태가 이러한 경향성을 지닌다고 하여 노동계급이 자본의 약탈적 침해와의 투쟁을 포기해야 하며 자기처지의 일시적 개선을 위하여 그때 기회를 이용하려는 그들의 시도를 중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만일 노동자들이 이렇게 행동한다면 이미 구제할 도리 없는 윤락자(淪落者)의 무리로 타락하고 말 것이다.(같은 책, 257쪽)
잉여가치의 생산 또는 이윤의 획득이 이 생산양식의 절대적(絶對的) 법칙(法則)이다. 노동력은 생산수단을 자본으로 유지하며, 자기 자신의 가치를 자본으로 재생산하고, 불불노동(unpaid labour)으로 추가자본의 원천을 제공하는 한에서만 판매될 수 있다. 만약 [노동자계급이 제공하고 자본가계급이 축적하는] 불불노동의 양이 급속히 증가해 그것이 자본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지불노동의 비상한 추가가 필요한 경우, 임금은 등귀하고, 그리고 기타 조건이 같다면, 불불노동은 그에 비례해 감소한다. 그러나 이 감소는 자본을 길러내는 잉여노동이 더 이상 정상적인 양으로 제공되지 않는 점에 도달하자마자, 반작용이 시작된다. 즉 수입(收入) 〚자본가가 상품의 판매에 의해 거두어들이는 자본가치와 잉여가치의 합계를 가리킨다〛 중 더 많은 부분이 자본화되고, 축적은 쇠퇴하고, 임금의 등귀운동은 장애에 부닥친다. 그리하여 임금의 등귀는 자본주의 체제의 토대를 침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점점 더 확대되는 규모의 재생산을 보장하는 한계 안에 머문다.(자본론 Ⅰ[하] 제7편 자본의 축적과정 제25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 848쪽)
자본축적의 법칙에 임금인상은 종속되어 있다. 자본주의에서 임금인상을 점진적으로 해나가면서 이윤을 점차적으로 축소해나가면 해방될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에 불과하다. 자본은 임금인상이 이윤을 축소시켜 축적을 방해하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간다면 자본 축적 규모를 축소시킴으로써 그에 따라 고용된 노동자 수가 줄어들거나 임금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면 자본 축적 자체를 중단함으로써 이 자본에 고용된 노동자들 전체가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심지어 현대자본주의에서 자본은 위에서 든 예 말고도 인플레이션을 통해, 또는 그것을 기회로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대폭 인하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냉정한 현실은 노동자의 빈곤과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생산성 향상은 고용 없는 성장을 낳아 노동자들 상당수를 실업 상태로 몰아넣고 있으며, 용케 취업을 하더라도 반실업 상태와 다를 바 없는 비정규직으로 되게 함으로써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을 감수하도록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노동소득분배율은 지속적으로 자본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자본은 점점 더 소수한테 집중되고 이들이 사회 대다수 부를 장악하고 있는 반면에 압도적 다수의 노동자 민중들의 삶은 점점 더 상대적 또는 절대적으로 악화돼 가고 있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재생산비를 높이려는 투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 착취와 피착취 관계를 파탄내고 임금노예의 현실을 깨뜨릴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노동자들이 이러한 투쟁에 갇히는 순간 노동자들은 점점 더 임금 노예의 굴레에 깊숙하게 빠져들게 된다.
사회가 대립하는 두 계급들로 분할되어 있는 한 : 한편으로는 자본가들, 즉 생산 수단 전체 — 토지, 원료, 기계 —의 독점자들로;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 수단에서의 모든 소유를 빼앗긴 근로 인민들이며 자신의 노동력말고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인 노동자들로 — 이러한 사회 조직이 존재하는 한, 임금 법칙은 전능한 채로 남을 것이며, 날마다 새롭게 노동자를 자본가에게 독점되어 있는 그 자신의 노예로 만드는 사슬에 튼튼하게 매달 것이다.(프리드리히 엥겔스, 임금제도, 박종철출판사 5권, 김세균 감수, 480쪽)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타파한다는 목표가 없이 노동소득분배율을 점진적으로 높임으로써 자본주의를 성숙시키고 이를 통해 잉여가치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지렛대를 확보한다는 강신준의 주장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필연적 법칙을 외면한 공상적이고 몰계급적 주장에 불과한 것이다. 이는 결국 “임금제도의 기초 위에서 균등한 보상, 또는 적어도 공정한 보상을 요구한다는 것은 노예제도의 기초 위에서 자유를 요구하는 것과 똑같다.”(맑스, 임금, 가격 및 이윤, 232쪽)
그렇다면 노동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근로 인민들 자신에 의한 노동 수단들 —원료, 공장들, 기계—의 보유.(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정한 하루 작업에 대한 공정한 하루 임금, 같은 책, 479쪽)
노동자들은 강신준 식 개량주의 방식이 아니라 노동자를 평생 노예적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옭아매는 자본주의 사적소유를 철폐하고 생산수단을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소유하는 투쟁의 궁극적 목표를 가져야 한다.
3
강신준은 자본론에서 맑스가 임금문제를 다룬 부분도 심각하게 왜곡 날조하고 있다. 여기서는 강신준이 맑스의 임금에 대한 원칙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디에 기인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조합들에서는 임금인상 요구의 근거로 생계비를 해마다 조사해서 발표하고 있습니다. 생계비가 얼마 올랐으니 임금을 그만큼 올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얼핏 보면 당연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임금=생계비’라는 개념에 기초한 것인데 실제로는 생계비가 아니라 기업의 근속연수에 따른 임금(연공급)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기업별로 분할된 노조는 물론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분할도 정당화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 임금개념은 원래 마르크스가 비판했던 고전경제학의 임금이론이었으며 그나마 고전경제학 스스로도 틀린 것으로 판단하여 이미 폐기한 임금이론입니다. 게다가 여기에서 마르크스가 얘기하고 있듯이 그것은 자본가의 임금관리 개념에 입각해 있습니다. ‘임금=생계비’라면 그 이상의 잉여가치는 얼마가 되든 상관할 필요가 없는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 마르크스는 이런 임금개념이 곧 자본주의를 극복한 사회의 임금이 될 것임을 언급해 두고 있습니다.
▲ 각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생활수단의 몫이 각자의 노동시간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되면 노동시간은 공공노동에 대한 개별적 참여도를 재는 척도로 이용되고, 그리하여 공동생산물 중 개별적으로 소비되는 부분 가운데 각 생산자들의 몫을 재는 척도로도 이용된다.(1권, 142쪽) (강신준 번역본 자본론 출처)
총노동에 대한 임금은 연공급과 구분하여 직무급, 능률급이라고 불립니다. <자본>의 유산을 물려 받아 초기업 노동조합과 강력한 노동자 정당, 그리고 두터운 사회안전망을 구축한 북유럽 국가들에서 연공급이 아니라 직무급과 능률급의 임금을 채택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입니다.(강신준, 같은 글)
임금은 노동자와 가족의 생계비의 가치로 구성된다는 임금 원칙은 맑스주의 임금 원칙에 철저하게 부합하는 것이다. 이것을 생활임금, 생계비 중심의 임금 원칙이라고 한다. 그런데 강신준은 이러한 임금원칙이 맑스의 입장과 다르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 강신준의 주장대로 임금=생계비라는 개념은 그 이상의 잉여가치는 상관이 없다는 태도인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노동력 재생산비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발전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이 발전 수준은 주로 노동자와 자본가의 투쟁으로 결정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이 생활임금, 생계비라는 원칙을 가지고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임금과 삶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투쟁을 전개한다.
연공급은 애초에 근속년수가 상대적으로 짧은 노동자들 비중이 높기 때문에 자본이 임금을 줄이고 노동자의 기업에 대한 충성도를 높여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하였다. 그러나 경총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가 단체는 최근에 와서는 정기승급을 폐지하여 연공급 비중을 줄이고 직무급 능률급 형태로 임금 형태를 바꾸려고 부단하게 시도하고 있다. 자본의 이러한 임금 체계 개편은 노동자 간 경쟁을 부추겨서 분열을 유도하고, 노동자 통제와 포섭을 강화하고 자본의 권력을 증대시키고 임금 지급 총액을 줄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추진되고 있다. 또한 직무급과 능률급은 둘 다 성과주의 임금의 형태로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생산성 향상에 동참하도록 유도한다.
맑스는 자본론에서 시간임금과 개수임금의 두 가지 기본적 임금 형태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시간임금의 변형된 형태가 개수임금이고 개수임금이 바로 성과급제 임금형태라고 하고 있다. 맑스는 시간임금이나 개수임금이나 노동자가 마치 일한 시간만큼 노동의 대가를 다 받고, 일한 양만큼 분배받는 것으로 보이도록 하여 착취를 은폐하고 자본의 착취를 높여서 이윤을 늘리려는 목적으로 사용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공급제는 근속년수가 늘어나면 임금을 더 지급하는 생활임금의 형태로 위장하고 있으나 사실 이는 “시간임금의 대표적인 변형태”(채만수, 노동자교양경제학, 제6강 임금, 2011년 제5판, 273쪽)로 역으로 근속년수가 짧으면 저임금을 합리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연공급제 형태에서도 자본은 기본급 비중은 줄이는 저임금 체제를 유지하면서 각종 수당 신설을 통해 장시간 노동을 유도해 왔다.
강신준 교수는 임금=생계비 원칙을 교묘하게 현재의 연공급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연결을 시키면서 직무급과 능률급 형태가 노동자의 임금 원칙이라고 하고 있다. 이는 또한 숙련에 기초한 임금 체계라고도 하고 있다. 강신준 교수는 이러한 임금 체계 개편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줄이고 산별노조 시대에 적합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본 것처럼 이러한 임금 체계 개편은 경총을 비롯한 자본가 계급과 정권의 임금 체계 개편에 부합하는 것에 불과하다.
강신준 교수를 비롯한 개량주의자들이 생활임금 원칙을 약화시키면서 스웨덴 모델을 따라 연대임금제 운운하는데, 이는 정규직 임금양보를 통해 전체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는 것으로 된다. 이 또한 자본과 정권의 임금 개편 방향과 일치하는 반노동자적 임금 체계에 불과하다. 이들 개량주의자들이 제시하는 숙련에 기초한 임금체계는 자본이 끊임없이 신기술과 자동화 체제를 도입하면서 대다수 노동력이 점점 더 단순하고 비숙련 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의 저임금을 합리화하는 계기로 이용될 수 있다.
물론 강신준 교수는 산별노조가 직무평가에 참여하면 임금삭감과 구조조정, 노동 유연화를 교섭 대상으로 해서 노조가 자본의 일방적 횡포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경영참가와 마찬가지로 노동조합이 계급타협주의에 빠지면 자발적으로 기업 경영 상태나 지불능력 상태를 고려하면서 생산성 향상에 나서고 임금양보와 단협양보에 나서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강신준 교수가 찬사를 보내는 독일 산별노조의 계급타협주의가 그렇다. 한국에서도 과거 강신준, 임영일 교수 등의 ‘산별만능론’적 입장은 노자 타협주의에 바탕을 둔 주장으로 이것이 과거 금속연맹과 현재 금속노조의 산별교섭 방침에 막대한 해악을 끼쳤다.
맑스는 <고타강령 초안 비판>에서 사회주의 사회의 분배 원칙을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만큼 분배 받는다”는 압축적 구호로 설명했다. 맑스는 자본론에서 강신준 교수가 위에서 인용한 부분을 서술하면서 분명하게 “상품생산과 대비하여”, “공동소유의 생산수단으로 일하며 또 각종의 개인적 노동력을 하나의 사회적 노동력으로 의식적으로 지출하는 자유인들의 연합체”를 전제했다. 그런데 강신준 교수는 맑스가 사회주의 사회에서 각 생산자가 사전에 책정된 공공노동에 대한 개별적 기여도인 노동시간에 따라 생활수단의 몫을 분배받는다는 설명을 한 부분을 가지고 이를 직무급, 능률급 임금 체계를 합리화 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물론 자본주의의 분배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그 “내용과 형식은 변화한다.” 그것은 사회주의에서는 전체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합리적으로 사전에 계획을 세우는 공공노동의 일부로 개인들의 노동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개별 자본의 이윤추구가 생산의 원동력이 되는 자본주의와 달리 착취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일하지 않는 자본가와 금리 생활자, 투기업자들처럼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기생분자들이 거대한 부를 소유하지만, 사회주의에서는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존중받고 투명하게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만큼 분배받는 합리적이고 실질적으로 평등한 분배방식이 자리를 잡는다. 물론 사회주의에서 자본가들의 착취는 없지만 노동의 결과물을 다 받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새롭게 생산을 확대하는데 필요한 비용,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구제비용 등을 공제하고 나서 노동의 결과물을 다 받기 때문이다.
강신준 교수는 자본주의를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면 그것이 새로운 사회를 가져올 것이라고 사고하기 때문에 이행전략이 전혀 없고 또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자본주의를 넘어선 사회에서의 분배 원칙을 가지고 자본주의 생산관계 내에서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의 직무급, 능률급은 사회주의 사회처럼 노동에 기여한 몫만큼의 분배가 아니라 단지 착취를 은폐하고 강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노동조합이 직무 평가, 능률 평가에 참여한다는 것은 최선의 경우는 단지 노동소득 분배율을 상대적으로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적용하고, 최악의 경우는 자발적인 임금삭감과 구조조정 동조 등 자본의 착취강화에 동조하는 결과를 빚게 된다. 최선의 경우조차도 마치 노동자가 착취가 없이 노동 결과물을 다 분배받는다는 환상을 조장하여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고 노자 타협주의 체제를 강화하여 착취체제의 안정성에 복무한다.
그렇다면 맑스주의의 생활임금, 생계비 임금원칙은 현실에서 어떠한 목표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
노동자들은 임금인상 투쟁을 철저하게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해방이라는 목표 하에 계급투쟁의 수단으로써 사용한다. 법적 노동시간을 대폭 단축하는 투쟁을 전개한다.
직무급, 성과급 임금체계 개악을 저지하고 잔업과 특근 없이 기본급 중심으로 생활임금을 쟁취하는 투쟁을 전개한다.
노동조건 후퇴 없는, 노동강도 강화 없는, 임금삭감 없는 실질적인 야간노동 철폐투쟁을 전개한다.
자본의 지불능력과 생산성 논리에 갇히지 않고 공세적으로 노동자 생활임금 쟁취투쟁을 전개한다.
최저임금위원회의 노사정 타협 논리에 갇히지 않고 최저임금 수준을 표준 생활임금에 가깝게 제출하고 전 계급적 투쟁으로 생활임금을 쟁취한다.
정규직의 양보가 아니라 정규직, 비정규직, 이주노동자가 단결하여 임금을 상향적으로 대폭 인상하고 임금 차별과 차이를 좁혀 나간다. 이럴 때는 정률제 보다는 정액제로 임금 격차를 더 줄이도록 한다.
시간제 근로 계약제 시도에서 보듯, 남성 노동자의 보조적 존재로 차별적으로 취급하여 여성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시키려는 시도를 분쇄한다. 자본의 무노동 무임금 이데올로기를 격파하고 파업 기간 동안의 임금을 받아낼 수 있도록 투쟁한다.
이처럼 노동자의 임금투쟁 원칙은 자본에게 놀아나면서 다양한 임금 체계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맑스주의의 변혁적, 과학적 사상에 충실하게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다.
4
맑스는 자본주의에서 임금의 본질을 연구하는데서 개별적, 우연적, 과도한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서로 교환되는 상품들은 같은 가치대로 교환된다는 등가교환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것은 자본의 노동력 착취는 교환과정이 아니라 생산과정에서 노동력의 가치 이상으로 노동력을 소비함으로써 만들어진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밝힌 것으로 맑스주의 노동가치설의 핵심적인 이론이다.
강신준 교수도 한편으로는 (잉여)가치는 구매된 노동력이 자신의 가치 이상으로 생산과정에서 소비됨으로써 만들어진다고 자본을 해설하고 있다. 그러나 강신준 교수는 다음에 보는 것처럼 실제로는 교환관계의 문제, 부등가 교환의 문제로 맑스주의의 과학성을 끊임없이 탈선시킨다.
강신준 교수는 봉건제에서의 착취에 대해서도 봉건제는 처음에 착취체제가 아니었는데 나중에 교환이 발전하고 생산과 소비가 불일치하면서 불평등이 심화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내가 이 책에서 연구해야 하는 대상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그 양식에 상응하는 생산관계 그리고 교환관계이다.”라는 맑스 자본론 1권에서의 문장을 인용하면서도 “위의 구절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교환관계’라는 단어입니다. 자본주의가 이전의 경제구조와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것이 바로 이 교환이기 때문입니다.”([오늘 ‘자본’을 읽다]I. 프롤로그 (2) 혁명에 사로잡힌 물음 - ‘자본’의 출생과 변증법 강신준 | 동아대 교수·경제학 ㆍ‘변증법’으로 자본주의 생산양식 발전시키는 게 혁명)라고 맑스주의를 왜곡시킨다.
맑스는 자본주의를 생산과 교환의 통일체로 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의 중심성을 강조한다. 변증법적으로 그것이 내적 모순의 원천이다. 레닌 역시 힐퍼딩의 <금융자본>에 대해 그 저작의 의의에도 불구하고 화폐와 신용, 유통자본과 은행자본을 중심으로 유통주의적 편향에 빠졌다고 주장하면서 독점자본은 생산의 집적에서 출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신준 교수의 이러한 입장에 대해서는 김성구, 박찬식, 박승호 교수가 다 같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강신준 교수는 불평등한 교환에 의해 개미(노동자)와 베짱이(자본가)의 운명이 역전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개미와 베짱이의 운명이 역전되는 비밀은 판매되는 상품의 가치가 구매된 상품의 원래 가치보다 크다는 점에 있습니다. 판매자에게 이 교환은 손해입니다. 그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많으니까요.(강신준, 같은 글)
강신준은 노동자가 판매하는 상품(노동력)의 가치가 자본에 의해 구매된 상품의 가치 보다 더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교환의 불평등 때문이 아니다. 교환과정에서는 노동력의 가치대로 평등한 형식으로 구매하면서도 생산과정에서 노동력이라는 특수한 상품을 그 가치이상으로 소비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강신준은 노동력 매매 과정에서의 등가교환과 생산과정에서 노동력 가치 이상으로 소비되는 생산과정에서의 착취의 문제를 교환과정의 문제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교양경제학>(채만수, 같은 책, 264쪽) 주6)에서도 강신준의 부등가 교환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이 책에서 부분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부분을 신문에서 그대로 인용해보자!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자가 왜 가난한가? 그것은 노동력 상품의 부등가교환 때문이며, 노동운동의 실천적 과제는 그것을 바로잡는 일이다. 교환이 사회적 합의과정이라면 교환을 바로잡는 방법도 사회적 합의에 따라야 한다. 이 사회적 합의란 다수에 의한 결정을 뜻하며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실행이다. … “노동자의 임금을 산업자본이 빼앗아 가고 산업자본의 이윤을 이자 형태로 금융자본이 또 빼앗아 간다. 이자라는 건 기생소득이다. 기생소득이 숙주소득을 넘어서면 붕괴한다.(한겨레, “한국 변혁운동 과학화, ‘자본’에 답 있다”, 2008.06.11)
단지 2008년만이 아니라 2010년에도 그는 “노동자들이 죽도록 일해도 겨우 죽지 않을 정도의 재생산 여력만 남기고 그들이 생산한 잉여가치를 부자들이 부등가교환을 통해 앗아가버리는 모순.”(왜 오늘 다시 ‘자본’을 들춰야 할까요, 한겨레, 2010년 9월 3일)이라며 여전히 부등가 교환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그는 왜 자꾸 교환문제, 부등가 ‘교환’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인가?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모순을 중심으로 해서 자본주의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자본>을 해설하면서 왜 그에게 생산영역은 회피해야할 무엇이 되고 있는가?
오늘날 개량주의의 기본적인 특성은 기본소득론자들처럼 생산관계의 모순을 회피하고 분배의 문제로 접근한다. 공황에 대해서도 과잉생산과의 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소비를 늘리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접근한다. 과잉생산 공황의 문제도 생산에서의 내부 모순을 근본적 원인이라고 보지 않고 단지 금융시스템의 문제, 외환위기 등으로 돌려서 금융 통제 강화를 공황 해결의 방법으로 제출한다.
강신준 교수 역시 노동자가 부등가 교환에 대해 임금을 점차적으로 높이면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지렛대가 확보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생산과정에서의 문제를 교환과정에서의 문제로 돌림으로써 생산관계 내부의 모순을 교묘하게 은폐하고 변혁이라는 실천적 결론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강신준 교수는 쏘련을 중심으로 하는 현실 사회주의를 부정하기 때문에 거대한 산별노조와 개량주의 노동자 정당을 가지고 있는 유럽의 사례가 현재로서는 유일한 노동자의 대안사회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자본>이 꿈꾸던 사회는 아직 지구상의 어디에서도 실현된 적이 없습니다. 단지 그것이 지향하던 방향, 즉 타인을 위한 노동을 멈추고 여가시간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한걸음 다가선 사회가 있을 뿐입니다. 바로 지난 대선에서 주목을 받았던 북유럽 사회들이지요. … 비록 완전한 자유의 나라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북유럽의 나라들은 바로 이런 과학적 확신에 대해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들 나라는 대부분 연간 노동시간이 1400~1600시간이며 기업의 의사결정에 노동자가 개입하는 공동결정제도(즉 생산의 사회화)를 갖추고 있습니다. 자유의 나라로 한 발짝 다가선 모습을 분명하게 보이고 있지요.(강신준 | 동아대 교수·경제학, [오늘 ‘자본’을 읽다]Ⅴ. 에필로그 : (2) 꿈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 경향신문, 2013-03-22)
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결정제도는 전형적인 노자 협조주의의 사례이다. 강신준은 이를 ‘생산의 사회화’라고 하는데, 그것은 자본주의 사적소유 체제를 철폐하고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집단적으로 소유하는 맑스주의의 변혁적 원칙과 완전히 다르다.
강신준은 북유럽의 ‘복지사회’가 내전과 제국주의와 전쟁을 치르고, 제국주의 포위 속에서도 우월한 계획생산 체제로 실업을 일소하고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과 각종 무상체제의 구축이라는 쏘련 사회주의의 거대한 성취에 자극을 받은 노동자들의 격렬한 계급투쟁에 대해 자본주의가 양보한 산물이라는 점, 신자유주의를 내세운 자본과 자본가 국가의 공세, 쏘련 사회주의가 해체되고 나서 자본주의의 힘이 월등하게 되고 계급 역관계가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되면서 복지체제도 무너지고 있다는 점, 특히 2007년 말 시작된 전 세계적 공황으로 말미암아 유럽 전반에서 노동자에 대한 공세가 강화되고 있고, 북유럽에서도 사민주의 정권들이 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사민주의 타협체제를 깨뜨리고 일방적인 공세를 취한 결과 사민당 정권에 대한 불만이 증대하여 연이어 집권세력으로부터 쫓겨나고 있다는 현실을 외면한다.
강신준은 자본해설의 결론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는” “관계의 변혁”을 운운한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고 북유럽 식의 사민주의 타협체제와 복지체제를 점진적으로 구축해나가다 보면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강신준은 자신을 수정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에 반발하지만 그 주장이 베른슈타인식 수정주의가 아니면 무엇인가? 사물의 본질에 맞춰 정확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과학이 하는 역할이다. 강신준은 수정주의자다. 다만 맑스의 이름을 팔아 맑스를 왜곡하고 날조하는 수정주의자다.
맑스는 임금과 관련해서도 강신준 교수 같은 사이비 맑스주의자들에게 경고라도 하듯,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그리고 임금 제도와 관련된 전반적인 예속 상태는 아예 제쳐놓더라도, 노동자 계급은 이러한 일상적 투쟁의 궁극적 효과를 스스로에게 과장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결과와 싸우고 있는 것이 것이지 그 결과의 원인과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하향 운동을 억제하고 있는 것이지 그 방향을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완화제를 쓰고 있는 것이지 질병을 치료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등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침없는 자본의 침략이나 시장의 변화로부터 끊임없이 생겨나는 이 피할 수 없는 유격전에만 전적으로 매달려서는 안 된다. 현재의 체제는 노동자에게 온갖 곤궁을 강요하지만 동시에 사회를 경제적으로 재건하는 데 필요한 물질적 조건들과 사회적 형태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공정한 하루 작업에 대한 공정한 하루 임금!’이라는 보수적 표어 대신에 그들은 ‘임금 제도 철폐!’라는 혁명적 구호를 자신들의 깃발에 써넣어야 한다.(맑스, 저작선집 3권, 박종철출판사, 임금, 가격, 이윤, 117쪽)
강신준 교수의 자본해설을 둘러싼 논쟁 비평(3)
-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배신자’ 카우츠키주의의 복권
1
앞에서 우리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1+1이 2가 되는 점진적인 성숙의 과정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더 성숙시키는 것이 ‘변혁 과제’라며 맑스주의 변증법을 날조한 강신준 교수의 수정주의를 비판했다. 맑스 자본론의 번역자인 강신준 교수가 이렇게 맑스주의를 왜곡 날조하고 개량주의로 빠지게 된 이유는 쏘련 사회에 대한 그의 입장 때문이다.
앞의 글에서 예고했듯이, 우리는 여기서 그의 쏘련 사회에 대한 노골적인 부정이 카우츠키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을 밝힐 것이다. 그는 카우츠키의 본(本)을 따라 러시아 혁명을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독재 체제’라고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고, 러시아가 자본주의 성숙이 되기 전에 볼셰비끼가 조급하게 인위적으로 혁명을 일으켰기 때문에 결국은 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1848년 혁명은 자본주의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실패했던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봉건제가 충분히 성숙한 다음 등장한 것이고 자본주의 이후의 경제체제도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숙한 다음에야 성립될 수 있습니다. 1848년은 자본주의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상태였고 따라서 그 혁명의 의지는 자본주의를 뛰어넘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실패도, 중국과 소연방의 자본주의로의 회귀도 모두 이 때문입니다(강신준, [오늘 ‘자본’을 읽다]I. 프롤로그 (3) 서문 : 유물론과 추상화, <자본>의 구조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숙해야, 그것을 뛰어넘는 혁명도 성공, 경향신문, 2012.9.7).
마르크스의 변증법을 이렇게 이해하면 현실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중국의 자본주의로의 회귀가 바로 생산력의 전제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생산력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1848년 혁명을 다룬 <프랑스의 계급투쟁>에서 마르크스가 부르주아 개혁전술이라고 불렀던 것과 <프랑스 내전> 서문에서 엥겔스가 “지금까지 기만의 수단이던 것이 해방의 수단으로 변화”(부르주아의 전술적 수단이 프롤레타리아의 유효한 전술적 수단이 된다는 의미이다)한다라고 했던 말을 설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자본주의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을 경우 사회주의 분파는 부르주아를 도와 자본주의의 성숙을 촉진하는 것이 역사적 과제라고 했던 말이 바로 그것이다. <자본>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구절은 자세히 찾아보면 상당히 많이 있다(강신준, 경향신문 연재 ‘오늘 자본을 읽다’에 대한 김성구 교수의 비판에 대한 답글, 미디어오늘, 2013-07-31).
자본주의 생산력이 발전하지 않았기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실패했다는 주장은 다음번에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하고, 먼저 강신준 교수의 반(反) 맑스주의적 역사인식과 맑스주의 왜곡부터 살펴보자!
부르주아 혁명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부터 비롯해서 1793년 쟈꼬뱅 독재와 1794년 부르주아 우파 지롱드 당의 테르미도르 반동, 1799년 나폴레옹의 쿠데타와 황제 등극, 1815년의 왕정복고, 1830년 7월 혁명과 루이 필립 입헌군주체제 설립, 그리고 1848년 부르주아 2월 혁명과 2월 부르주아 체제의 반동화, 같은 해 6월 노동자 봉기와 유혈진압, 그리고 비극으로 끝난 나폴레옹 1세에 이어 1852년 역사의 두 번째 반복으로 희극으로 끝난 짝퉁 나폴레옹인 루이 보나빠르뜨 나폴레옹 3세의 황제 즉위, 1871년 파리꼬뮌과 패배 그리고 이러한 100여년에 걸친 역사적 격랑 속에서의 확고한 지배체제로 구축됐다. 1848년 부르주아 혁명은 이러한 역사 과정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데 강신준 교수는 역사발전 과정으로부터 도대체 무엇을 배우는가? 프랑스 부르주아 혁명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역사가 직선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전진과 후퇴, 반동과 재전진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선형적으로 발전한다는 역사발전의 법칙을 배운다.
위대한 러시아 혁명의 성공, 실업 일소와 무상체제의 성립, 파시즘과의 투쟁에서 승리, 피억압 민족해방 같은 인류의 거대한 진보, 수정주의와 제국주의의 공세에 의한 쏘련 해체, 그리고 자본주의의 전 세계적 승리, 그리고 쏘련 해체 이후 두 차례에 걸친 자본주의 대공황과 제국주의 침략의 반동성 증대, 제국주의가 부추기고 있는 민족분쟁과 유혈내전, 자본주의의 장기적이고 극심한 공황과 노동자 민중의 전 세계적 저항의 물결…
이러한 거대한 역사적 흐름은 쏘련 해체와 사회주의의 패배가 역사의 전진과 후퇴, 반동과 재전진이라는 역사 과정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한다. 강신준 교수가 쏘련 해체를 목격하고는 자본주의를 성숙시키는 것이 ‘변혁과제’라며 자본주의에 투항하는 것과 다르게, 맑스주의 사상의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세력들은 청산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의 일시적 패배와 후퇴, 반동의 공세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역사의 발전을 향해 진군하고 있다.
강신준 교수는 자신의 ‘성숙 변증법’의 근거를 대기 위해 맑스의《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과《프랑스 내전》을 자기 멋대로 해석한다. 그러나 맑스의 위대한 두 저작은 부르주아의 반동적 계급적 본질, 소부르주아의 기회주의적 본질과 계급투쟁과 계급동맹, 그리고 그 정점에 서 있는 부르주아와의 격렬한 내전과 혁명 과정인 프랑스 내전을 다룬다. 강신준은 맑스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동시대의 계급투쟁과 역사를 분석한 기념비적 저작을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와 함께 자본주의 성숙을 촉진하는 계급협조주의 저작으로 돌변시키는 신기에 가까운 재주를 과시하고 있다.
강신준 교수는 엥겔스가 변혁의 수단으로 ‘보통선거제’를 옹호했다고 말하는데 선거를 자본주의를 폭로하고 선전, 선동, 조직화라는 변혁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강신준이 저주하는 레닌과 볼셰비끼의 입장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보통선거제는 노동계급의 성숙도를 재는 것 외에 몇 년에 한번 지배계급을 선출하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한 엥겔스의 주장은 말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강신준은 엥겔스가 파리꼬뮌 20주년 기념일인 1891년 3월 18일에 쓴《프랑스 내전》서문 마지막에서 강조했던, “최근 사회민주주의 속물들은 또 한 번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말에 대해 건전한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다. 좋다. 신사 여러분, 이러한 독재가 어떤 모습인지 알고 싶은가? 파리꼬뮌을 보라, 이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다.”라는 문장을 빠뜨린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엥겔스가 ‘사회민주주의 속물’이라고 경멸했던 당시 우경적인 독일 사회민주주의노동당 지도부들은 이를 은폐하고자 그 말을 의도적으로 지우고 ‘독일’이란 말을 삽입하는 파렴치한 날조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들 지도부는 맑스의《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에 대한 엥겔스 서문도 사전 검열했을 뿐 아니라 엥겔스를 합법주의의 사도쯤으로 왜곡 날조하여 엥겔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엥겔스의 말년은 맑스가 미완성 유고로 남긴 《자본》2, 3권을 정리하는 과업과 더불어 엥겔스의 여러 개인 서신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독일에서 사회민주노동자당 내 우경적인 지도부들의 검열과 삭제, 왜곡과 싸우는 일로 점철돼 있다.
강신준은 “자본주의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을 경우 사회주의 분파는 부르주아를 도와 자본주의의 성숙을 촉진하는 것이 역사적 과제”라고 했다며 맑스 주장도 심각하게 왜곡날조하고 있다. 맑스와 엥겔스는 1847년 12월《공산당 선언》에서, 부르주아가 봉건제에 맞서 혁명적으로 싸울 때에는 공동으로 싸우면서도, 그럴 때에서조차도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적대적 대립에 대해 명료한 인식을 노동자계급에게 끊임없이 인식시키고, 부르주아의 정치적 지배로 만들어질 사회적, 정치적 조건들을 부르주아에 대항하는 무기로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맹에 보내는 중앙위원회의 1850년 3월의 호소》에서도 노동자 독자성을 강력하게 강조하며, 부르주아에 맞서는 중단 없는 혁명을 강조했다. 이처럼 맑스, 엥겔스의 주장을 날조하는 데에 있어서는 강신준 역시 당시의 파렴치한 사회민주주의 속물들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날조의 대가다.
2
위대한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에 대해서도 강신준은 일관된 역사왜곡과 더불어 철저하게 부르주아 반동배의 입장에 서서 바라보고 있다.
볼셰비끼는 왜 사민주의 딱지를 사용하게 되었을까? 민주주의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보수진영과 볼셰비끼는 사실 겉모습은 다르지만 혈관 속에는 같은 피가 흐르는 친족지간이기도 하다. 볼셰비끼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게 된 이유는 1917년 러시아의 특수한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10월의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다음 실시된 제헌의회 선거에서 볼셰비끼는 25%밖에 지지를 얻지 못하고 볼셰비끼의 정적인 사회혁명당이 57%의 지지를 획득했던 것이다. 선거결과에 따른다면 볼셰비끼는 권력을 사회혁명당에게 내어주어야 했다. 하지만 볼셰비끼는 1918년 1월 6일 개원한지 하루 만에 의회를 해산시키고 독재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연히 독재를 정당화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만들어낸 개념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이고 그때부터 마르크스는 엉뚱하게도 공산독재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강신준, 김성구 교수의 비판에 대한 두 번째 답글, 미디어오늘, 2013-08-13)
강신준 교수는 여기서도 노동자, 농민, 억압받는 소수 민족, 광범위한 지식인, 심지어 군대 내부에서조차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았고, 수십억의 식민지, 반(半) 식민지 민중들을 해방의 열망으로 들끓게 하고, 심지어 제국주의 내의 노동자 민중들을 착취와 억압이 없는 혁명으로 떨쳐 일어서게 했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러시아 혁명을 ‘쿠데타’라고 파렴치하게 날조하고 있다. 그리고 볼셰비끼가 주도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이 맑스주의 사상의 핵심 사상이 아니라 단지 볼셰비끼가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라고 왜곡하고 있다.
강신준은 국내에서 최초로 사실상 노동자계급의 배신자이자 진보적 인류의 적으로 역사적으로 증명된, 카우츠키주의를 복권하고자 한다. 일찍이 2004년 10월 발표한 논문에서 강신준은 대담하게도《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카우츠키를 위한 변론》이라는 글을 써서 “볼셰비즘의 소멸과 함께”, “볼셰비즘의 족쇄로부터 일단 벗어나”,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를 강조한 카우츠키를 통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신준은 최근 2013년 8월에는 카우츠키의《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번역 출판하여 카우츠키주의를 노골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그런데 1991년 강신준이 발표한《수정주의 연구1-노농동맹 문제와 기회주의의 발전과정》이라는 논문 제목만으로 보면, 수정주의를 기회주의의 발전 과정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1992년 발표된《제2 인터내셔널 시기의 마르크스주의》라는 그의 논문을 보면, 독일 사민당이 반전 결의를 배반하고 인터내셔널 국제적 연대를 와해시킨 것에 대해 비교적(!)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여기서 비교적이라고 한 것은, 그가 사회주의의 원칙과 목표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그것은 노동자계급이 아직 소수로 머물러 있고 사회주의 노동자운동이 소수의 이념적 운동가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을 때 형성된 이념적 유산이었다. 그러나 실천이란 끊임없이 변화되는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며 그런 객관적 상황이 반드시 의식적 목표에 조응해 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특히 노동자운동이 대중운동으로 발전하게 되면 운동의 중심은 소수의 이념적 지도자들에 의존하기보다는 다수의 노동자대중에게로 옮겨지는 것이 필연적이었다. 따라서 운동은 의식적으로 계획되기보다 현실의 변화에 조응하는 것이 요구되었다.”라면서 기회주의의 싹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제국주의 전쟁을 찬동하고 애국주의 열풍에 휩쓸려서 노동자 계급의 국제주의 원칙과 변혁적 목표를 상실한 제2 인터내셔널과 기회주의 지도부의 반동적 행보는 대중들의 요구에 의해 “현실의 변화에 조응하는 것”으로 합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강신준의 지적, 사상적 변절은 쏘련 붕괴 이후 서서히 동요하다가, 현실 사회주의를 전면 부정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서 변혁적 입장을 청산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미 앞서 몇 차례 언급했던 것처럼, 혁명 이후 러시아에 대한 강신준 교수의 중상은 바로 카우츠키로부터 비롯됐음을 카우츠키의 저작으로부터 직접 알 수 있다. 카우츠키에 대한 비판은 곧 카우츠키의 복권을 시도하는 강신준 교수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1930년대 초반에 카우츠키가 쓴 여러 원고들이 묶여서 그의 사후인 1946년에 《사회민주주의 대 공산주의(Social Democracy versus Communism, 출처: http://www.marxists.org/archive/kautsky/1930s/demvscom/index.htm )》라는 제목으로 출판이 됐다.
이 저작 중 《4. 레닌과 1917년 러시아 혁명(4. Lenin and the Russian Revolution of 1917, 출처: http://www.marxists.org/archive/kautsky/1930s/demvscom/ch04.htm )》에서 카우츠키는 레닌이 통일전선을 반대하고 1903년 러시아사회민주노동자당의 분화 이래로 멘셰비끼와 국제사회주의운동 진영(제2 인터내셔널)로부터 분화해 왔다고 비난한다. 그리고 마침내 제헌의회를 해산함으로써 러시아 내 사회주의 세력들인 멘셰비끼와 사회혁명당과 통일전선을 거부함으로써 극도로 고립되어 3년 동안의 내전과 극도의 비참한 상태로 빠져들었다고 주장한다.
카우츠키는 평화와 자유가 급속한 경제발전을 가능하도록 하고 노동자계급의 급속한 발전을 이룩하게 될 수 있었는데, 그것이 사회주의 경제이고 이것은 노동자와 농민의 민주주의를 통해 독재와 테러 없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한다. 카우츠키는 레닌과 볼셰비끼가 그 대신에 이 내전과 테러 독재 폐허 위에서 국가의 새로운 군국주의 관료제 기관을 창설하고 새로운 전제국가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카우츠키는 마침내《6. 쏘련은 사회주의 국가인가?(6. Is Soviet Russia A Socialist State?, 출처: http://www.marxists.org/archive/kautsky/1930s/demvscom/ch06.htm )》라고 묻는다. 카우츠키는 스탈린시대에 관료주의 국가경제를 창설했는데 그것은 새로운 산업 기구를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상당수 재정을 오로지 노동대중들의 새롭게 창출된 잉여가치로부터 최대한 뽑아냈다고 비판한다. 카우츠키는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이는 인민들이 아니라 정부라고 하면서 러시아 혁명 이후 들어선 정부가 인민들의 주인이라고 비난한다. 카우츠키는 프랑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그랬던 것처럼, 1917년 러시아 혁명의 결과는 모든 계급의 폐지가 아니라 구 계급을 새로운 계급들로 교체한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한다.
카우츠키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멘셰비끼의 지지자였다. 카우츠키는 1903년 러시아사회민주주의노동자당 내부의 분열을 레닌과 볼셰비끼의 탓으로 돌린다. 카우츠키는 멘셰비끼가 러시아 짜리즘과 싸우는 혁명가들의 당이 아니라 기회주의당으로 러시아 맑스주의당을 타락시키려 했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는다. 물론 카우츠키는 멘셰비끼의 당관과 일치하기 때문에 그것을 타락이라고 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카우츠키는 1905년 혁명을 경유하면서 멘셰비끼의 정치노선, 조직노선이 공개적으로 나타난 뒤에도 그것을 일방적으로 지지했다.
멘셰비끼는 1905년 민주주의 혁명에서 노동자 계급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러시아 부르주아 계급과 동맹을 추구했다. 1914년 제국주의 전쟁을 전후해서는 노동자 국제주의를 배신하고 애국주의 관점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했다. 1917년 2월 혁명 이후에는 부르주아와 손잡고 임시정부에 들어가서 빵과 토지와 평화라는 민중들의 열망을 배신하고 제국주의 전쟁을 계속했다. 심지어는 이 민중적 열망을 배신한 임시정부에 맞서 노동자 민중들이 투쟁하자 임시정부 내부의 멘셰비끼와 농민혁명당은 부르주아와 짜리즘의 백위군 장교들과 합세하여 노동자들과 병사들의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뿐만 아니라 께렌스끼를 수상으로 하는 임시정부는 짜르 체제 장군인 꼬르닐로프와 밀약하여 볼셰비끼와 노동자 민중들의 저항을 폭력적으로 분쇄하기 위한 협약을 맺기도 했다. 그러나 이 협약이 꼬르닐로프 반란을 낳고 황제체제를 복귀하는 것으로 나타나면 임시정부 자체도 붕괴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그제야 꼬르닐로프와 관계를 끊었다. 임시정부가 결국 스스로 노동자 민중의 혁명이 두려워서 한 때 꼬르닐로프와 손잡은 것이 결국은 꼬르닐로프 반란을 불러들인 격이 되었다.
이 꼬르닐로프 반란을 제압한 것은 바로 볼셰비끼가 주도하는 무장병력이었다. 이때부터 2월 부르주아 혁명은 “모든 권력을 쏘비에뜨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노동자 민중의 이해를 유일하게 대변한 볼셰비끼가 주도한 10월 혁명으로 중단 없는 혁명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이처럼 10월 혁명은 레닌과 볼셰비끼가 전략전술을 지도하고 이끌기는 했으나 소수의 쿠데타나 음모가 아니라 2월 혁명으로 탄생한 임시정부가 반동적인 세력이 되어 민중적 요구를 배신하고, 민중의 염원을 고스란히 대변한 볼셰비끼가 주도한 혁명으로 자연스럽게 나아갔던 것이다.
카우츠키는 멘셰비끼가 러시아 10월 혁명 이후에도 구체제를 복귀시키려고 하는 지주, 짜리즘의 군대,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 같은 러시아 내의 반동세력과 러시아를 침공한 제국주의자들과 손잡고 러시아 혁명을 붕괴시키려 했던 추악한 반동적 행보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않는다. 한 때 러시아사회민주주의노동자당 내의 온건분파였던 멘셰비끼가 걸었던 반동적 행보는 맑스주의당을 내걸었던 정당 중 역사상 최악의 타락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카우츠키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러한 멘셰비끼의 지지자였다는 것은, 카우츠키나 그가 지도자로 있었던 제2인터내셔널이 당시에 멘셰비끼의 반동적 입장이나 행보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노동자 계급을 배신하고 제국주의와 부르주아 반동배와 손잡은 정치적 타락세력들과의 단호한 정치적 단절은 분열이 아니라 필수적이고 착취와 억압에 시달리고 평화와 해방을 원하는 수십억 노동자 민중의 요구에 철저하게 부합하는 것이었다.
카우츠키는 내전과 테러 독재 위에 새로운 볼셰비끼 독재권력이 수립되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러시아 혁명을 무너뜨리고 착취와 억압체제로 복귀하기 위한 제국주의와의 싸움과 지주, 자본가 계급, 백위군 등 반혁명 세력들과의 내전이었고, 혁명권력을 사수하기 위한 공공연한 계급투쟁이었다. 혁명권력이 카우츠키가 말하는 평화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의 급속한 경제발전을 하지 못하고 ‘전시공산주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카우츠키가 지지하는 반혁명 세력들의 공공연한 반란 때문이었다.
러시아 혁명과 쏘련 사회주의에 대한 카우츠키의 비난을 보면 쏘련을 국가자본주의로 비난한 원조가 바로 러시아 혁명의 적대자인 카우츠키였음을 알 수 있다. 카우츠키는 제국주의전쟁에서부터 러시아 혁명 이후까지 제국주의 이해에 봉사하는 반동적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레닌과 볼셰비끼에 대한 카우츠키의 적대감은 뿌리가 깊지만, 카우츠키가 러시아 혁명 권력을 ‘독재권력’, ‘붉은 짜르’이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한 것은, -위에서 강신준도 그런 것처럼- 직접적으로는 볼셰비끼가 10월 혁명 몇 달 이후 치러진 제헌의회를 해산시킨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레닌은 제헌의회 해산의 정당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바로 처음부터 러시아 혁명은 전체 노동계급과 착취 받는 계급들의 완전한 정치적 경제적 해방을 위해 이들 계급의 투쟁을 이끌 수 있는 그들의 유일한 대중조직으로서 노동자 병사 농민 대표 쏘비에뜨를 만들어냈다.
러시아 혁명 초기 전체 동안에 쏘비에뜨는 참가자 수를 증가시키고 성장하고 힘을 획득했다. 그들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부르주아 계급과 타협하는 환상을 버리고 부르주아민주주의 의회 체제의 형태의 기만적인 본질을 배웠다. 그들은 이러한 형식과 모든 종류의 타협과 단절하지 않고서는 억압받는 계급들의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실천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10월 혁명 이전에 뽑아낸 선거인 명부를 기반으로 해서 선출된 제헌의회는 타협주의 세력들과 입헌민주당이 권력을 보유했던 때에 존재했던 정치권력 관계의 낡은 관계의 표현이다. 그 당시에 인민들이 사회혁명당 후보자들을 위해 투표했을 때, 그들은 부르주아 계급의 지지 세력인 사회혁명당 우파와 사회주의의 지지 세력인 사회혁명당 좌파들 사이를 선출하기 위한 입장에 있지 않았다. 따라서 부르주아 의회 공화국의 왕관을 쓴 제헌의회는 10월 혁명과 쏘비에뜨 권력의 길에 장애물이 될 것이다.
...이전의 부르주아 의회 체제는 자신의 목적 보다 오래 살아남았고 사회주의 성취라는 목표와 절대적으로 양립할 수 없었다. … 부르주아 계급 의회 체제와 제헌의회를 위해 쏘비에뜨라는 최고 권력과 인민이 승리를 거둔 쏘비에뜨 공화국을 포기하는 것은 지금 한발자국 뒤로 후퇴하는 것이 될 것이고 노동자 농민의 10월 혁명을 붕괴시키는 원인이 될 것이다.
쏘비에뜨 권력에 반대하여 실제로는 제헌의회 바깥에서 최고조로 필사적인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우익 사회혁명당과 멘셰비끼당은 자신들의 언론에서 공공연하게 쏘비에뜨를 전복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착취로부터 해방의 이해에 있어서 필수적인 노동자계급 권력을 가지고 착취자들의 저항을 분쇄하는 것을 독재적이고 불법적인 것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자본가들의 하수인들인 그들은 파괴 활동 자체를 비호하고 있으며, 할 수 있는 한 테러 행위라도 공공연하게 사용하려 하는데, 어떤 “정체불명의 단체들”은 이미 그러한 행위에 착수했다. 그러한 상황 하에서 제헌의회에 남아 있는 역할은 오로지 쏘비에뜨를 전복하려는 반혁명의 투쟁을 위한 은신처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따라서 쏘비에뜨중앙집행위원회는 이에 따라 제헌의회를 해체할 것을 결의한다.(레닌,《제헌의회 해산에 대한 법령 초안(Draft Decree on The Dissolution Of The Constituent Assembly)》, 1918년 1월 6일, 출처: http://www.marxists.org/archive/lenin/works/1918/jan/06a.htm )
제헌의회 해산은 혁명적 원칙에 의해서 실시됐다. 이 결정은 과거의 낡은 지배계급의 국가기구를 대신해서 대중적 권력기관으로 등장한 쏘비에뜨중앙집행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행해졌다. 물론 볼셰비끼가 이 혁명권력의 주도자였고, 쏘비에뜨 내에서 노동자 병사 민중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볼셰비끼가 이 해체를 주도했다.
카우츠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러시아 혁명의 ‘불법성’ 운운하며 이 혁명이 ‘쿠데타’라고 악선동한다. 카우츠키의 논리를 따르자면 혁명으로 황제체제를 무너뜨린 1917년 2월 혁명도 불법이고 쿠데타이다. 선거가 아닌 민중 다수의 압도적 지지를 안고 짜르 봉건체제를 무너뜨리는 2월 혁명으로 수립된 임시정부와 함께 이중권력으로 들어선 쏘비에뜨 체제도 불법이다.
카우츠키가 2월 혁명 당시의 무장봉기의 기관이자 대중권력 기반인 쏘비에뜨를 부정한다면 2월 혁명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것이고 임시정부 자체도 부정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임시정부는 2월 혁명 이후에 쏘비에뜨와 더불어 민중적 요구에 의해 이중권력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대중적인 열망을 배신하고 쏘비에뜨 대중권력을 부정했으며 새로운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의 반혁명 기관으로 전락했기 때문에 붕괴되었던 것이다.
노동자 민중들이 2월 혁명 뒤에 대중적 요구를 반영시키기 위해 제헌의회 소집을 줄기차게 요구했을 때, 임시정부는 소집을 미루고 반혁명적 조치를 취하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탄생한 새로운 대중권력인 쏘비에뜨와 그 지도적 정치세력인 볼셰비끼가 이미 정당성을 상실하고 혁명에 의해 사라져버린 부르주아적 절차와 방식에 의해 치러진 제헌의회 선거 결과를 거부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레닌은 카우츠키의 반동적 기회주의에 대해 이렇게 비판한다.
“역사가 카우츠키는 께렌스끼 치하에서 멘셰비끼와 사회혁명당 우파가 부르조아지의 제국주의 정책과 약탈적 관행을 지지했음을 보여주는 사실에는 귀조차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한편 그는 제헌의회의 다수가 바로 제국주의 전쟁과 부르조아 독재의 옹호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신중하게 침묵해버린다. 그리고 이것을 ‘경제분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소나무, 135쪽)
3
강신준이 번역한 《프롤레타리아 독재(The 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 10장 새로운 이론(The New Theory) 출처: http://www.marxists.org/archive/kautsky/1918/dictprole/ch10.htm )에서 카우츠키는 ‘볼셰비끼주의자들은 맑스주의자들이고 맑스주의에 대한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그 영향을 받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그들의 독재는 누구도 역사발전의 연속적인 단계에 의해 조성된 장애를 뛰어넘거나 법률제정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맑스주의의 가르침에 모순된다. 어떻게 그들의 방식을 두고 그것이 맑스주의 기초를 인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비판을 한다. 볼셰비끼가 역사발전의 ‘성숙’을 기다리지 않고 조급하게 인위적으로 혁명을 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객관적인 역사발전 단계와 의지, 주체역량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개인과 집단의 의지, 법률제정만으로 역사발전 단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말은 자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개별 개인과 집단이 역사를 변화시키는 실천적이고 의식적인 행위를 하지 말고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역사의 발전 단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여기에 최대한 부합하는 실천을 할 때, 개인과 집단은 오류와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가장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을 두고 단계를 제대로 인식하고 거기에 맞게 합목적적인 실천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맑스나 엥겔스, 레닌 같은 위대한 혁명가들은 객관적인 역사발전 단계를 면밀하게 탐구하면서도 당을 만들고 계급의식과 계급투쟁을 그토록 강조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카우츠키는 객관적 단계만을 주장하며 혁명을 대기주의적으로 사고했고, 급기야는 구체적인 혁명과 실천을 앞에 두고는 혁명의 반대자가 되어 역사의 반동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러시아 혁명은 레닌에 의하면 제국주의 체제의 ‘약한 사슬’을 끊어내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일찍이 레닌이《러시아에서 자본주의 발전》에서 분석했던 것처럼, 자본주의가 발전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사회의 특수성은 자본주의 발전으로 주요 산업은 기계적 대공업이 뿌리를 내리고 일부 자본주의 도시가 발전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농민이 인구 구성에서 절대 다수이고, 봉건 황제체제가 지배하는 국가권력이 있었다. 러시아는 한편으로는 유럽 제국주의 국가에 의해 금융적으로 종속돼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절대주의의 최후의 보루로서 중국, 조선, 동유럽 국가들에 대해서는 제국주의 국가처럼 지배력을 발휘했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은 러시아 사회를 사실상 반(半)봉건 사회로 규정할 수 있도록 한다. 이로 인해 1917년 2월 혁명 이전까지 러시아에서 혁명의 단계는 부르주아 혁명의 단계였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러시아 노동자 계급과 농민들을 비롯한 민중들은 이중삼중의 고통에 빠져들었다. 한편에서는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노동자 민중이 착취와 수탈을 당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미발전 때문에 고통 받았다.
레닌은 《인민의 벗이란 무엇인가》(새길, 93-94쪽)에서 러시아 노동자들이 자본의 노골적인 착취에 더해 노예제적 형태로 억압과 약탈이 병존함으로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이중의 모순에다가 러시아의 제국주의 전쟁 참여는 민중들을 기아와 빈곤, 전쟁의 참화로 몰아갔고 이것이 1917년 2월 혁명과 10월 혁명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멘셰비끼와 카우츠키는 이러한 러시아 사회의 깊은 모순을 외면하고 자본주의 ‘성숙’이 사회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가져올 것이라며 혁명을 기다리다가 마침내는 역사의 반동세력으로 타락해 갔던 것이다. 러시아의 미성숙을 이유로 러시아 혁명을 반대했던 카우츠키는 정작 자본주의가 고도로 ‘성숙’했던 독일에서 1918년 눈앞에 펼쳐졌던 혁명에서는 동요하는 중앙파로 방관자 역할을 수행하다가 결국은 이미 반혁명 세력으로 전락한 사회민주주주의노동자당 우익과 협력하여 혁명을 파괴했다.
카우츠키와 한국에서 카우츠키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강신준 교수가 러시아 혁명과 쏘련 사회주의 체제를 ‘독재’권력이라고 극도로 부정하고 매도하는 근거는 자신들의 ‘순수 부르주아 민주주의’ 관점 때문이다. 카우츠키가 쓰고 강신준 교수가 번역한《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글에 대해 레닌은 그 글은 ‘프롤레타리아의 독재’가 아니라 “부르조아의 볼셰비키 공격 개작(改作)”이라고 비판했다.
레닌은 일찍이《국가와 혁명》에서도 그랬고,《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를 통해서도 카우츠키가 말하는 ‘순수 민주주의’가 노동자를 속이려는 자유주의자의 거짓 문구에 불과한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 글에서 레닌은 “부르조아 민주주의는 그것이 중세사상에 비해 대단한 역사적 진보라 할지라도, 제한되고 불완전하고 거짓되고 위선적이며, 부자에게는 천국이고, 피착취자, 가난한 자에게는 함정이며 속임수인 것은 항상 여전하며 또한 자본주의 하에서는 반드시 그렇게 된다.”고 카우츠키 주장을 반박했다. 또한 레닌은 카우츠키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미화하는 것에 대해 “미국과 스위스의 가장 민주적이고 공화주의적인 부르조아지가 파업을 일으킨 노동자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것은 노동자를 향해 군대를 출동시키고 계엄령을 선포하는 자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한편으로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의 성과가 담겨 있고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부르주아는 자신의 계급독재 지배체제를 유지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면 부르주아 민주주의조차도 수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늘날 가장 민주적인 부르주아 공화국이라는 미 제국주의가 국내외적으로 보이는 반민중적인 행보와 민주주의 파괴와 침략적 행태를 보면 부르주아의 지배는 자본가 계급의 독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카우츠키는 맑스주의 국가론의 핵심인 프롤레타리아 독재 노선을 폐기하고, 반혁명적 입장에 서서 공공연히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인 러시아와 쏘련을 비방중상하며 부르주아 체제의 대변자가 되었다. 카우츠키가 맑스주의의 혁명적 사상에 충실하지 못하고 부르주아의 사상적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때 맑스주의 교황으로 불리며 맑스와 엥겔스의 교의를 받들고 베른슈타인 같은 맑스주의 수정주의자들과 투쟁하던 카우츠키의 마지막 공적(公的) 전투는 자본주의 지배계급들과의 전투가 아니라 공공연하게 러시아 혁명을 비방하고 적대시하는 것이었다.
카우츠키의 말년의 저서는 러시아 혁명과 이후 쏘련을 비방하는데 전력을 쏟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카우츠키는 쏘련을 파시즘과 같은 테러독재로 비난하며 반공 반쏘 전선의 투사 역할을 했지만 그는 결국은 독일에서 반공 반쏘를 내걸고 등장한 나찌에게 아내와 자식들을 잃고 1938년 암스테르담 망명지에서 초라하게 생을 마쳤다. 그런데 카우츠키가 그토록 저주하고 비방했던 스탈린을 지도자로 하던 쏘련이 바로 수천만 명의 인민들이 전쟁에서 희생당하면서도 독일 파시즘을 패배시켰던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러한 카우츠키를 한국에서 복원하고자 하는 강신준은 바로 카우츠키의 반동적 사상과 타락한 정치적 행보를 다시 복원하겠다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카우츠키주의를 복원하고자 하는 강신준이 얼마나 대담하고 부르주아 사상의 영향에 빠져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카우츠키의 주장을 이어받아 강신준 교수가 주장하는 생산력이 발전하지 못해서 쏘련이 망했다는 주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강신준 교수의 자본해설을 둘러싼 논쟁 비평(4)
- 낮은 생산력이 아니라 사회주의 생산관계의 약화
1
카우츠키주의자들이나 멘셰비키주의자들, 또한 서구나 한국의 많은 기회주의, 수정주의자들이 쏘련 해체 원인을 낮은 생산력에서 찾고 있다. 대중적으로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주장은 러시아에서 혁명은 미숙한 자본주의 발전 상황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볼셰비키처럼 인위적으로 혁명을 하지 말고 자본주의를 더 발전시켜서 성숙한 자본주의가 왔을 때 혁명을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이에 따라 미숙한 상태에서 조급하게 혁명을 한 볼셰비키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보며, 이 혁명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강신준도 이들과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과연 이 주장은 옳은 것인가? 저발전 국가의 모순이 집중되면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는데 실제로 혁명권력은 여전히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소농, 기계화가 발전하지 않은 낮은 생산력, 후진적인 물류와 유통 때문에 고통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다가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과 이와 결탁한 반동들의 반혁명 책동으로 인해 내전이 발발했고, 러시아는 자본주의의 발전한 생산력 위에서 사회주의 발전을 한 것과는 정반대로 폐허 위에서 출발해야 했다. 내전 당시에는 당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전시공산주의 정책을 취해야 했고, 이 때문에 크론슈타트 반란이 일어나면서 농민과의 동맹도 한 때 위험에 빠졌다. 이후 사회주의 생산관계를 유지하면서 거래의 자유 등 부분적으로 자본주의적 조치를 취했던 신경제 정책도 특별한 상황에서 취해졌다.
농업 집산화 과정에서 그토록 격렬한 계급투쟁이 발생했던 것도 러시아 농업의 후진성에서 상당 부분 기인한다. 만약 농촌에서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발전하여 대규모 농업이 이뤄졌다면, 이를 바탕으로 사회주의 생산을 조직할 수 있는 더 좋은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이 낮은 생산력 때문에 사회주의 건설 초기에 고통을 받았다는 것하고 이 때문에 러시아 혁명이 필연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얘기다.
쏘비에트연방은 산고를 겪으면서 농촌과 도시에서 사회주의 생산관계를 발전시켰다. 쏘비에트 연방이 본격적으로 도시에서 산업화를 추진하고 농촌에서 집산화를 추진할 무렵에 자본주의 사회는 1929년부터 밀어닥친 유례없는 대공황으로 생산이 붕괴되고 대량실업이 만연하고 굶어죽는 사람이 도처에 널리는 등 폐허가 되었다. 그러나 쏘비에트 계획 체제는 이 공황의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고도성장을 했다.
미국의 저명한 맑스주의자였던 레오 휴버만은 이때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1929년에 일어난 붕괴는 세계공황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생산의 마비, 그에 따른 인민대중의 실업과 궁핍은 세계 모든 곳―오직 한 나라를 제외하고―을 휩쓸었다. 공황은 물결처럼 세계 모든 나라를 휩쓸었고 마침내 소비에트 국경까지 밀려와서 소비에트동맹을 덮치려고 하였다.
러시아 사람들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라는 울타리 안에 있었기 때문에 안전하였다.(레오 휴버먼,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동녘, 1987년, 김창수옮김, 250쪽)
쏘련에 적대적인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쏘련이 역사상 유례없는 생산력 발전을 이룬 것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쏘련은 짜르체제의 유산과 폐허 위에서 짧은 시간 동안에 전 세계에서 2위의 생산력 발전 수준을 달성했다. 고도의 과학기술 발전으로 전 세계에서 첫 번째로 1959년 무인위성 달착륙에 성공한걸 봐도 그걸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저발전한 생산력의 문제로 쏘련 해체를 접근하는 것은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산력의 발전법칙에 있어서도 이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생산력은 스스로 후퇴하는 법이 없으며 그 발전의 한계에 부딪히고 나서라야 비로소 그 발전을 멈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이 전환점, 즉 자본주의가 새로운 생산체제로 넘어가는 지점입니다. 따라서 생산력 발전이 빚어내는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생산력의 발전을 멈추게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발전의 한계를 찾아 그것을 더욱 발전시킬 대안을 마련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강신준 | 동아대 교수·경제학, [오늘 ‘자본’을 읽다]II. 제1권 : (9) 협업, 분업과 매뉴팩처, 경향신문, 2012-11-09)
생산력이 낮은 자본가는 결국 모두 전멸의 운명을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교훈은 의미심장합니다. 자본주의는 자신보다 생산력이 낮은 사회를 결코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적 생산력을 앞지르지 못한다면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해집니다. 위에서 말한 폭스콘 공장이 형식적으로 사회주의를 내세운 중국이라는 점은 생산력의 법칙을 건너뛰어 자본주의 이후로 가는 길은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강신준 | 동아대 교수·경제학, [오늘 ‘자본’을 읽다]II. 제1권 : (11) 대공업에 의한 매뉴팩처, 수공업, 가내공업의 혁명, 경향신문, 2012-11-23)
이처럼 강신준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통일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매사를 생산력의 문제로만 접근하고 있다. 강신준은 자본주의 생산력이 빚어내는 모순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틀렸다.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에 일치하지 않는 생산관계가 빚어내는 모순이다.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의 한계를 해결하는 방법은, 그 발전의 한계를 찾아 그것(생산력)을 더욱 발전시킬 대안을 마련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산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 사적소유 생산, 무정부적, 무계획적 생산에 대비되는 집단적, 계획적 생산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새로운 생산관계는 오로지 이윤추구에 혈안이 되어 사회 전체를 희생시키는 자본을 위한 생산력 발전이 아니라 전체 사회의 발전을 위한 조화로운 생산력 발전을 도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하고 새로운 생산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변혁의 문제이기 때문에 강신준은 생산관계의 변혁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강신준과 다르게 맑스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사회의 물적 생산제력은 어떤 발전단계에 이르면 그들이 지금까지 그 안에서 움직였던 기존의 생산제관계 또는 이것의 법률적 표현일 뿐인 소유제관계와 모순에 빠진다. 이들 관계는 생산제력의 발전형태들로부터 질곡으로 전환된다. 그러면 사회적 혁명기가 도래한다. 경제적 기초의 변화와 더불어 전체의 거대한 상부구조가 조만간 변혁된다.(칼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서문, 김호균 역, 중원문화, 1988년, 7쪽)
이처럼 맑스는 단순하게 생산력 발전이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물적 생산제력의 발전과 생산제관계의 모순이 충돌해서 사회적 혁명이 도래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 발전과 더불어 현대 자본주의 생산력은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고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생산력 발전은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계기가 아니라 노동자 다수를 실업자로 만들고, 취업한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 저임금에 시달리도록 만든다. 자본주의 생산은 사적소유 체계에서 필연적인 이윤추구를 위한 생산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은 생산은 점점 더 사회화되는 반면 그 생산의 결과물은 점점 더 한 줌도 안 되는 자본가들, 특히 독점자본가들이 깡그리 가져가고 노동자 민중 절대 다수는 빈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은 과잉생산을 낳는데, 노동자 민중 다수가 점점 더 빈곤해지고 있기 때문에 과잉생산 된 생산물은 점점 더 소비되지 못하고 과잉생산 공황은 더 심각해지는 것이다.
강신준은 자본주의 생산력을 앞지르지 못하면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고 하면서, 중국의 예를 들고 있다. 그러나 중국도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저발전한 국가에서 혁명이 일어났으나 현재 중국의 자본주의화와 과잉축적의 위기는 생산력 저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이 사회주의 생산관계를 외면한 채 일면적으로 생산력 발전에만 매진해 온 결과이다.
2
쏘련 해체의 원인이 자본주의에 비한 후진적 생산력 발전이라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스탈린이 생산력 발전만 추구하는 생산력주의에 빠졌기 때문에 쏘련을 해체로 이끌었다는 정반대의 비난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스탈린은 어떻게 주장하고 있는가?
야르센코 동지는, 사회주의 하에서는 사회의 생산관계와 생산력 간에 아무런 모순도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오류를 범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현 생산관계는, 그것이 완전히 생산력의 성장에 적응하기 때문에 생산력을 급속도로 전진시키고 있는 그러한 시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에 안심하고 우리나라의 생산력과 생산관계는 모순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일 것이다. 생산관계의 발전이 생산력의 발전에 뒤떨어지고 있으며 또 앞으로도 뒤떨어질 것이므로 모순은 무조건적으로 있으며 또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지도기관들의 정책이 정확할 때는 이 모순은 대립으로 전화하지 못하며 또 여기에서는 사태가 사회의 생산관계와 생산력 간의 충돌로까지 이를 수 없다. 그러나 야르센코 동지가 권고하는 것과 같은 옳지 않은 정책을 실시한다면 문제는 다르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며 우리의 생산관계는 생산력의 가일층의 발전을 저해하는 큰 장애물로 전화할 수 있을 것이다.(스탈린, 쏘련에서의 사회주의 경제 제 문제)
스탈린은 이처럼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존재하는데, 사회주의 생산관계를 강화하여 이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면, 비적대적 모순이 적대적 모순으로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는 이로부터 자본주의가 부활할 수 있다고까지 경고하고 있다.
레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정주의의 불가피성이 소생산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정주의의 불가피성은 어디에 놓여 있는가? 왜 그것은 민족적 특이성이나 자본주의의 발전정도의 차이보다 더 뿌리 깊은 것인가? 왜냐하면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프롤레타리아와 나란히 항상 광범한 쁘띠부르조아지와 소소유자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소생산에서 발생했으며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수많은 새로운 “중간층”들이 자본주의에 의해 불가피하게 생겨나게 된다.(공장의 하청업체들, 가내노동, 자전거나 자동차 산업과 같은 대산업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소규모 작업장들) 이 새로운 소생산자들 또한 불가피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열로 내던져진다. 그렇기 때문에 광범위한 노동자들의 대열 내부에서 쁘띠부르조아적 세계관이 계속해서 고개를 치켜들게 된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에서 일어나게 될 운명의 변화에 도달할 때까지는 그럴 수밖에 없으며 항상 그럴 것이라는 것도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레닌, 맑스주의와 수정주의, 레닌저작집 4-3, 전진, 1991년, p.171)
그런데 사회주의에서도 사회주의 생산관계를 점차로 강화시켜나가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소생산을 한 순간에 절멸할 수도 없고, 절멸시켜서도 안 된다. 레닌은 러시아처럼, 후진적인 나라에서 혁명 이후에도 지배적으로 남아 있는 농업적 상품경제와 싸우지 못하면 이로부터 자본주의적 임금노예제가 부활할 수 있다고 심각하게 경고하고 있다.
이 교환과 거래의 자유가 상품생산자를 자본의 소유자와 노동력의 소유자, 즉 자본주의적 임금노예제를 부활시킨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에 걸쳐 정확히 농업적 상품경제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V.I. 레닌, 러시아공산당(볼) 제10차 대회, 1921년 3월 8-16일, 민중민주주의 경제론1:레닌의 노동자통제 및 국유화론, 새길, 백승욱 편/해설)
후진적인 농업적 상품경제와 같은 소생산은 사회주의 생산관계를 강화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흐루시초프를 기점으로 하는 쏘련 내 수정주의자들은 계획 생산 체제를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상품 생산을 절멸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중앙집중적인 계획생산 보다는 분산적인 이윤체계를 강화하면서 시장을 점차적으로 강화시켜 나갔다. 이것이 바로 유고에서 가장 먼저 출발한 ‘시장 사회주의’였고, 이 시장사회주의는 마침내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낳는 반혁명을 초래했다.
자본주의 내에서 수정주의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에서도 수정주의의 물질적 토대는 사회주의 생산관계가 아니라 소생산과 유통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생산을 토대로 해서 ‘전인민의 국가’, ‘평화적 이행론’ 등 수정주의가 나왔다.
흐루시초프가 쏘비에트 당과 국가의 지도자가 된 이래로, 그는 수정주의 정책의 모든 과정을 밀어붙여 자본주의 세력의 성장을 크게 촉진하였고, 쏘련 내에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계급투쟁 그리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길 사이의 투쟁을 또 다시 첨예하게 만들었다.
지난 몇 년간의 쏘비에트 신문 기사를 훑어보면, 쏘비에트 사회 내에 과거 착취 계급의 수많은 요소들이 존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부르주아지 세대의 요소가 거대한 규모로 존재하며, 계급 양극화가 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전 인민의 소유인 쏘비에트 기업 내에서의 다양한 부르주아적 요소들을 살펴보자.
국가 소유의 공장에서 지도적 관리들과 그 무리들은 그들의 지위를 남용하여 공장 설비와 재료를 사적 생산을 위한 “비밀 작업장”을 설치하는 데에 사용하고, 생산물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고 이권을 나누었다. … 이제 집단농장에서 다양한 꿀락 분자들의 활동을 살펴보자.
몇몇 지도적 위치에 있는 집단농장 관리들과 그들의 무리들은 집단농장 자산을 마음대로 훔치고 투기했으며, 자유롭게 공적자금을 탕진하고 사취했다.(마오쩌둥, 흐루시초프의 거짓 공산주의와 그 역사적, 세계적 교훈에 대하여: 9차 쏘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공개장에 대한 논평, 1964년 7월, 노동자정치신문 98호)
쏘련에서 사회주의적 생산관계의 약화는 흐루시초프 수정주의의 등장 이래 수십 년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2차 경제는 쏘련 사회주의 경제의 암적 존재가 되기도 했다.
1953년 이래 불법적인 영리활동이 합법적인 활동보다 더 극심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가장 중요한 범죄적인 경제활동형태는 국가로부터, 즉 노동현장․공공기관으로부터 물건을 훔치는 형태였다. … 쏘련에서 2차경제가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1차 경제를 손상시켰다. 2차 경제는 불법 경제를 확장시킴으로써 합법 경제가 수행되는 것을 방해했고, 경제계획의 기반을 약화시켰으며 소득불평등을 증대시켰고, 쏘련 경제를 악화시켰다. 2차 경제는 또한 공산당을 부패하게 만들었다. 당 간부들과 국가 관료들이 2차 경제에 속한 사적 기업들로부터 뇌물수수와 물질적인 지분을 받게 됨으로써 이들 관료들이 개인 무역이나 생산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더라도 그들은 사실 불법의 돈을 긁어모으는 형태에 관여했다.
그로스만(Grossman, 1998)에 의하면 쏘련에서 1979년에 부패, 즉 쏘련 관료들의 뇌물수수가 극단적으로 널리 퍼져서 공식적인 모든 위계구조에까지 상하로 다 확산되었다. 고르바초프가 권력을 잡기 전에도 쏘련 공산당과 쏘련 정부 내에서 2차 경제의 이데올로기적 영향이 그 자체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1980년대에 와서 2차 경제의 활성화로 인해 쁘띠 부르주아계급이 성장했고, 당과 국가의 부패한 특정 집단이 자본주의, 자유시장, 사적소유, 자유기업, 부르주아적인 “자유”로 향하는 것을 선호하기 시작했다.('흐루시초프 거짓말하다', 저자 그로버 퍼와의 인터뷰(3부 최종) 중 키란(Roger Keeran)과 케니(Thomas Kenny)가 쓴 [배반당한 사회주의(Socialism Betrayed) 3장(The second economy)에 있는 내용, 노동자정치신문 88호, 2012년 9월)
레닌이 전시경제의 폐허를 극복하기 위해 신경제정책을 실시했는데,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적 요소의 등장은 불가피했다. 그러나 레닌은 신경제 정책이 자본주의에 대한 후퇴이지만 사회주의 생산을 강화하기 위한 일시적 후퇴라고 주장했다. 레닌은 사회주의 생산을 강화하여 신경제정책 과정에서 나타났던 자본주의적 요소를 포위 공격하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스탈린 사후 2차 경제는 과연 신경제정책처럼 불가피했다고 볼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2차 대전으로 인한 폐허가 있었지만 쏘련은 전쟁 전 사회주의 건설의 경험을 통해 빠른 시간 동안에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해 났다. 그리고 쏘련은 거대한 산업상의 성취를 거뒀다. 따라서 스탈린 사후에 등장한 수정주의의 물질적 토대인 소생산과 상품거래와 이윤체계의 점진적 강화는 레닌 당시의 신경제정책처럼 불가피한 조치가 아니었다. 그런데 흐루시초프 수정주의나 고르바초프 수정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수정주의 조치가 레닌의 신경제정책을 따르는 것이라고 하여 인민들을 속였다.
3
수정주의의 점차적 강화에도 불구하고 해체되기 전까지 쏘련의 기본 생산관계는 사회주의 생산관계였다. 쏘련 해체 이후에 옐친 정권 당시부터 급속도로 광범위한 사유화가 진행되고, 러시아판 독점자본인 올리가르히(Oligarch)가 등장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쏘련 사회주의는 여러 가지 오류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쏘비에트 공적 소유와 계획경제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했다.
쏘비에트 경제의 가장 중요한 성취 중에는 실업의 철폐가 있었다. 쏘련은 모든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은 헌법에서 소중히 여겨지는 너무나도 중요한 사회적 의무로 간주되었다. … 1977년 헌법 41조에서는 주 41시간 노동으로 상한을 정하고 있었다. 야간 교대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은 7시간 일을 했지만 완전한 변환 보수(8시간)를 받았다. 위험한 일을 하거나(예, 광부들) 계속 긴장해야하는 노동자들(예, 의사들)은 6시간 혹은 7시간 일했지만 풀타임 보수를 받았다. 초과 근무는 특별한 상황을 빼고는 금지되었다(Szymanski, 1984).
1960년대부터 노동자들은 원조를 받은 휴양지에서 보낼 수 있는(Kotz, 2003), 평균 한 달짜리 휴가를 받았다(Keeran and Kenny, 2004; Szymanski, 1984).
쏘비에트의 모든 60살이 된 남성들과 55살이 된 여성들에게는 퇴직 연금이 제공되었다(Lerouge, 2010). 연금에 대한 권리(장애인 혜택뿐만 아니라)는 자본주의 국가들처럼 정치인들의 순간적인 변덕에 따라 변하거나 폐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쏘비에트 헌법에 의해 보장되었다(Article 43, 1977).
1936년 초 여성들은 완전한 보수를 받는 임신 휴가를 보장받았고, 다른 많은 혜택들과 마찬가지로 쏘비에트 헌법에서 보장받았다(Article 122, 1936). 또한 1936년 헌법으로 임신한 가정, 육아와 유치원의 폭넓은 연결망을 제공했다. 반면 1977년 개정된 헌법은 “광범위한 탁아 시스템을 발전시키고 제공하여, 자녀 출산에 보조금을 지불하는 방법으로, 대가족을 위한 육아 수당과 혜택을 제공하는 방법으로 가족”을 돕는 것을 국가의 의무로 했다. (Article 53). 쏘련은 공공 탁아를 발전시킨 첫 번째 국가였다(Szymanski, 1984)(스티븐 가우언스, 공적소유, 계획경제는 유효한가?(1), 노동자정치신문 94호, 2013년 3월).
쏘련의 생산력 발전 수준도 높았다.
공적 소유와 계획이 생활수준을 올리는데 어떻게 더 잘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는 아마도 중동과 남아시아 인근 국가들과 쏘비에트 중앙아시아의 소득을 비교해보는 것일 것이다. 1928년, 이들 지역들은 산업화 국가의 이전 단계에 있었다. 공적 소유와 계획 경제 하에서, 쏘비에트 중앙 아시아 소득은 1989년 1인당 연간 5,257달러 수준으로 성장했다. 그러한 성장은 인근 자본주의 국가들인 터키보다 32%, 이란 보다 44%, 파키스탄 보다는 241%가 더 높은 것이었다(Allen, 2003). 중앙아시아를 보면 쏘련 변경 지역의 생활수준이 인근 지역에서 가장 높다는 것이 분명하였다.(스티븐 가우언스, 공적소유, 계획경제는 유효한가?(2), 노동자정치신문, 95호, 2013년 4월)
쏘련의 성과는 진보적 인류 전체의 성과였고, 쏘련의 해체는 진보적 인류 전체의 패배였다. 쏘련 해체는 쏘비에트 연방 내부의 민족들 간의 심각한 분규를 만들었다. 쏘련 해체 이후에 자본은 기세등등하여 서구 유럽을 비롯한 노동자계급이 투쟁으로 쟁취한 성과들을 대대적으로 공격했다. 러시아의 민중들 역시 자본주의 복귀 이후에 실업이 만연하고 무상체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빈곤에 허덕이며 지옥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쏘련 해체로부터 교훈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강신준 교수처럼, 쏘련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진실과도 어긋날뿐더러 제국주의의 쏘련과 현실 사회주의 비판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강신준 교수의 쏘련에 대한 중상과 비방은 사회주의에 대한 환멸을 불러일으키고 자본주의에 투항하는 결과를 빚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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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련 해체 이후에 강신준뿐만 아니라 소부르주아 지식인 전체가 쏘련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전면 부정하고 환멸을 보내는 것이었다. 트로츠키 진영도 여기에 한 몫을 했다. 소부르주아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반쏘반공주의가 유행하고 있다. 쏘련에 대한 과학적이고 진지한 접근 대신에 ‘스탈린주의’라는 비난 한마디에 얄팍하게 동참하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의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이라는 작자들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1848년 발표된 <공산당 선언>은 23쪽에 불과하지만 역사학·철학·사회학·경제학이 통합된 최고의 지적 창조물이었다. 그 속에 담긴 생산력과 생산관계, 역사 변증법, 소외 이론 등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박 교수는 160여년에 걸친 ‘역사적 교훈’을 통해 마르크스가 계급투쟁을 강조한 나머지, 생산력·생산관계의 모순과 지양이라는 혁명조건의 성숙을 강조하지 못했고, 혁명적 변혁의 과정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고 비판한다. 또 국내외에서 번역된 <공산당 선언>의 해석도 그간 스탈린주의에 의해 상당 부분 왜곡됐는데, 이번 기회에 본래 의미를 살린 번역과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스탈린주의 해석 걷어낸 ‘공산당 선언’, 한겨레신문, 전정윤 기자, 2012.11.23)
박영호 교수처럼 맑스주의자임을 여전히 내세우고 있지만 이들에게 맑스는 이른바 ‘스탈린주의’에 오염된 맑스주의다. 맑스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오염을 제거하고 맑스를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이 새롭게 해석하는 맑스는 ‘계급투쟁’이 빠진 맑스주의로 지배계급에게 전혀 위험이 되지 않는 온건한 맑스주의다. 박영호는 강신준과 마찬가지로 ‘스탈린주의 왜곡’ 운운하며 맑스의 혁명성을 거세하고 있다. 강신준과 마찬가지로 ‘혁명조건의 성숙’ 운운하며 사실상 변혁을 회피하는 것이다.
실제 그는 정년퇴임을 앞두고 가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폭력을 앞세우고 전체주의로 빠졌던 사회주의는 현실 역사에서 자본주의에 패했다. 그러나 이제 '혁명을 포기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정치경제학(마르크스 경제학)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자본주의 대칭어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인본주의다, 조선일보, 2008.01.08)라고 주장했다.
“초기 맑스주의의 휴머니즘으로 돌아가자!” 이것이 현실 사회주의를 비난하면서 맑스-레닌주의의 변혁적 계급투쟁 사상을 거세하고자 하는 소부르주아 지식인들의 공통의 구호다. 이러한 사유방식이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소부르주아 지식인들에게 팽배하고 있다. 이른바 ‘진보진영’에 몸담고 있는 상당수 활동가들한테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맑스주의는 소부르주아 지식인들에게 변혁의 무기가 아니라 진보적 지식인임을 내세울 수 있는 간판이며, 강단에서 밥벌이 할 수 있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사회 변혁을 위해서는 먼저 맑스 레닌의 과학적, 변혁적 사상의 기치를 내거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강신준 교수 같은 소부르주아 지식인들이 유포하는 소부르주아 잡사상과 싸워야 한다.
지금까지 강신준 교수가 러시아 혁명이 낮은 생산력 발전으로 인해 패배했다는 주장을 비판해 왔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제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와 다르게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자본주의는 생산력의 성숙으로 인해 모순이 극에 달해 있다.
전 세계 대공황과 과학기술발전 등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으로 인해 대다수 노동자들은 과잉 인구가 되어 가고 있다. 자본의 성장에 비해 노동력 고용은 상대적, 절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청년실업을 비롯해서 실업이 만연하고 있고, 노동력의 유연화는 극에 달해 있다. 노동자 민중의 빈곤은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제국주의 전쟁으로 인한 학살과 제국주의가 부추기는 내전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 자살이 만연하고 범죄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환경재앙으로 인해 이상기후가 속출하고 있고, 독점자본의 요구에 의해 사유화가 강화되고 있다. 공동체는 파괴되고 있다. 국가권력은 폭력성이 증대되고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성숙할 대로 성숙한데서 오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모순이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강신준 교수는 러시아가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조급하게 혁명을 일으켰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백보를 양보해서 자본주의 생산력이 고도로 발전한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왜 혁명을 회피하고 있는가?
자본주의를 성숙시키는 것이 변혁의 길이라는 강신준 교수에게 자본주의 생산력이 고도로 발전하여 가장 성숙한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이 자행하고 있는 악랄한 야수와 같은 범죄행위를 예로 드는 것으로 긴 비평을 마치려고 한다. 자본주의를 변혁하고 제국주의 체제를 타파하는 것만이 이러한 인류의 참상을 해결하는 유일하고 시급한 길이지 않는가?
1990년 미국은 제1차 이라크 침공 당시 단 한발 폭탄(GBU-27)으로 아미리야 대피소에 몸을 숨긴 어린이와 노약자 408명을 몰살시켰다. 근데 그런 폭탄은 대량살상용이 아니라고 한다. 되돌아보자. 지금까지 실전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해 대량 학살극을 벌인 것도 미국이다.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서 온 천지를 불바다로 만들었던 네이팜탄도, 또 베트남전쟁에서 무려 8천만톤을 퍼부어 지금까지 후유증을 낳고 있는 악명 높은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도 모조리 미국이 사용했던 화학무기다....미국은 온갖 명분을 갖다 붙이며 전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본질은 하나다. 모조리 불법이었다. 1990년 제1차 이라크 침공부터 따져보자. 미국은 유엔을 윽박질러 안보리 결의안 678호로 대이라크 무력 사용권을 따냈지만 그게 민간부문 공격과 대량학살을 추인한 건 아니었다. 미국은 이라크 군인 10만여명과 민간인 10만여명을 포함해 20만명을 살해하는 과정에서 학교, 병원, 상수도, 대피소를 비롯한 민간부문까지 무차별 공격했다. 미국은 ‘어떤 전쟁도 시민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1949년 제네바협정을 짓밟는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 이어 대이라크 경제 봉쇄를 통해 의약품과 식량보급마저 차단해 50만명 웃도는 어린이와 노약자를 간접 살해했다.
1999년 코소보전쟁은 국제법을 총체적으로 유린한 범죄행위였다. 코소보에서 세르비아계(유고)가 알바니아계 시민 50만명을 학살했다며 이른바 ‘인도주의 폭격’이라는 당치도 않은 신조어를 들이댔던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연합군의 유고 공격은 출발부터 불법이었다. 나토는 유고 정부에 코소보 자치안과 유고 전역 사찰권을 담은 랑부예협정을 강요했고 유고 의회가 승인을 거부하자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공습하기 시작했다. 나토는 ‘유엔 헌장이 규정한 국제법 원칙을 어기고 무력이나 협박으로 체결한 조약은 무효다’고 규정한 비엔나(빈)협약의 조약법협정을 위반했다.(정문태 기자, 화학무기보다 더 소름끼치는 것은?, 한겨레신문, 2013.09.06)(끝)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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