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최저임금 투쟁에 있어서 민주노총 지도부의 상실감에 대해

전국노동자정치협회 2015. 9. 9. 15:37

최저임금 투쟁에 있어서 민주노총 지도부의 상실감에 대해

 

 

(2015년 7월 8일)

 

 

민주노총 지도부는 오늘 "최저임금노동자와 국민 열망 짓밟은 박근혜 ‘배신의 정치’, 공익위원안 거부한다!"는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민주노총이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과 공익위원에 대해 느끼는 '배신감'과 '당혹감' 만큼이나 민주노총에 대해 '배신감'과 '당혹감'을 느낀다.

 

민주노총 성명란에 게시된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 일동의 입장은 필시 민주노총의 공식 입장일 수밖에 없는데, 이 입장은 계급의식과 정세인식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민주노총은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최소의 조건'으로 제시한 최저임금 1만원 인상안에서 대폭 후퇴한 8천200원을 제시했다. 이 '대폭 후퇴'한 최저임금안은 관례상 이후 이보다도 더 후퇴한 추가적인 양보를 염두에 둔 액수이기도 할 것이다. 참고로 공익위원안은 현행 5,580원에서 6.5%(5,940원)~9.7%(6,120원) 인상안이다.

 

민주노총은 이 양보안을 제시하면서 "우리가 최초 1만원 요구에서 큰 폭의 양보안을 제출한 것은 최저임금위원회와 그 공익을 책임지겠다는 공익위원들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정권과 자본의 대리인들인 '공익위원'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는 말인가?

 

공익위원은 철저하게 자본과 정권의 입장을 대변하면서도 형식적으로는 노와 사의 사이에서 중립적이고 초월적인 입장에 선 것처럼 위장하고 지배계급에 복무하고 있다.

 

'공권력'이 단 한번도 '공적권력'인 적이 없었듯이, '공익위원'이 자본과 정권의 이해가 아닌 노동자 민중의 이해를 위해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은 경험적으로도 매번 확인되는 주지의 사실이 아닌가?

 

민주노총의 배신감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들 공익위원들 뒤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으며, 따라서 사회적 기대를 짓밟고 턱없이 부족한 인상구간을 제시한 작태는 박근혜 대통령의 배신행위이기도 하다."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구간은 빈곤에 빠진 700만 저임금 노동자들을 내팽개친 배신이며, 이로써 박근혜 정권은 양극화 완화와 서민경제 활성화라는 시대적 열망도 배신했다."

 

"최저임금 인상률을 7%대로 제한하자며 정치적 외압을 일삼은 새누리당도 ‘배신의 정치’ 당사자다."

 

배신! 배신! 배신!

 

민주노총은 공익위원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에 대해서도 허탈감과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배신'은 사전적으로 "어떤 대상에 대하여 믿음과 의리를 저버림"이다. 민주노총은 박근혜 정권이 노동자에 대해 믿음과 의리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그 믿음과 의리를 저버리자 배신감을 느끼는 것인가?

 

박근혜 퇴진을 내걸고 싸우고 있는 민주노총이 얼마나 자주적인 계급의식이 결여되어 있는가? 이러한 비판이 단순히 민주노총이 구사하고 있는 '수사'나 일부 표현에 대해 꼬투리를 잡는 것인가?

 

민주노총은 정세인식도 결여되어 있다.

 

"박근혜 정부는 올해 초 '빠른 인상'과 '소득주도성장’을 언급했다. 저임금노동 해소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나마 느끼는듯했지만 결국 노동자의 뒤통수를 쳤다. 세계는 앞 다투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있지만, 박근혜 정권은 반대방향을 선택했다."

 

"진정 올해만큼은 다를 줄 알았다. ... 상생경제를 희망하는 영세상공인들도 노동자와 함께 했으며, 무엇보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은 대폭 인상을 열망했다. 그들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공익위원들이 그 절박한 기대와, 이전과 다른 국민적 열망을 안다면 이럴 순 없다. 아무리 못해도 두 자릿수 이상 인상안으로 최소한의 양심을 보여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는 배신당했고, 충격은 분노로 바뀌었다."

 

'상생경제' 같은 몰계급적 표현과 인식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과연 정권과 자본이 최저임금 결정에서 '진정 올해만큼은 다룰 줄 알았다"는 말인가? 정권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은 정권의 의도에 대해 제대로 된 정세인식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왜 민주노총은 정권이 올해만큼은 알아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시켜 줄 것이라고 주관적이고 자의적이고 환상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가?

 

민주노총은 올초 3월 최경환 부총리가 디플레 운운하며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이 일어나지 않고는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 "올해도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말을 그대로 믿었다. 아니 최소한 올해는 이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를 했다.

 

첨예한 계급투쟁을 해야 마땅한 민주노총이 순진한 정세인식을 하고 있다가 마침내 공익위원을 내세워 정권의 입장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배신감과 충격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민주노총은 "세계는 앞 다투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있지만"이라고 하는데, 최저임금 인상을 앞서 발표한 일본 아베 정권에서나 미국 오바마 정권에서나, 독일이나 영국에서나 노동자 민중에 대한 임금삭감과 복지 후퇴, 노동유연화 공세는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이 공세는 점점 더 가혹해지고 있고,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권력의 파쇼화가 점점 더 노골화되고 있다.

 

2013년 가장 먼저 아베 정권이 스스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관제춘투'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2014년에 일본은 전산업 평균 2.18% 임금인상이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아베 정부는 작년 소비세를 5%에서 8%로 인상시킴으로써 수요를 되려 후퇴시켰다. 2015년 3월 일본 후생노동성의 공식 발표에 따르더라도 일본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19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자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권들이 나서서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나서는 것은 저들 스스로 인정했듯이, 세계 경제가 수요가 위축된 디플레이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요를 부분적으로 증가시킨다고 해서 과잉생산 공황이 해결될리도 만무하거니와 자본이나 정권이 노동자 민중의 삶을 앞장서서 개선한다고 하면 그것은 더 이상 자본주의가 아니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해 존재하지, 노동자 민중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존재하는 체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 역시 디플레이션 위기를 해결한다는 목표로 '관제춘투'에 나섰지만, 경총은 이를 대놓고 비웃으며 곧바로 1.6% 내 범위에서 임금인상을 조정할 것을 지침으로 내렸다. 경총은 이 1.6% 안에는 통상임금 확대 분, 60세 정년 의무화 등이 포함되므로 최종 임금조정률은 이를 고려해서 결정하라고 주문을 함으로써 사실상의 명목임금 동결이고 물가인상에 비하면 실질임금 삭감 방침인 것이었다.

 

여기에 박근혜 정권은 담뱃값을 100% 인상했다. 교육비, 교통비, 주거비, 난방비, 야채, 생선 등 노동자 민중의 생활필수품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있다.

 

정권은 앞에서는 관제춘투 운운하면서 마치 정권이 앞장서서 임금인상을 할 것처럼 설레발치면서도 뒤로는 노동시장 구조개악과 공공부문 정상화(황폐화) 계획으로 노동자에 대한 총공세에 나서고 있다. 노동3권을 인정하지 않고 노조를 파괴하고 있다. 복수노조 공세로 노동자 내부를 분열시키고 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을 요구하니,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서 노예적 평등을 이룩하겠다고 기만하고 있다. 실업문제 해결을 요구했더니 정리해고 확대로 답하고 있다. 임금피크제(임금추락제)에서 보듯 노동시장 구조개악은 임금삭감으로 자본에게 최대한의 이윤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다.

 

임금공유제로 정규직 임금을 깎아서 비정규직 임금을 쥐꼬리만큼 보전시키고 이를 통해 정규직화 요구를 틀어막겠다고 하고 있다. 임금공유제는 자본이 지급해야하는 총액임금의 삭감에 다름 아니다.

 

공공부문 노동자 대오 내부를 성과금으로 분열시키고 노조를 약화 또는 파괴하겠다는 것이다. 사유화를 완수하겠다는 것이다. 정권은 공무원 연금 개악으로 현재의 저임금과 노동자 권리를 포기한 대가로 받는 국민연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알량한 연금마저도 대폭 삭감했다. 그것도 모자라 정권의 충견을 내세워 공무원 노조 내부를 분열시키고 있다.

 

이처럼, 저들의 공세는 차고 넘친다. 저들의 공세는 전 세계 경제위기만큼이나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정권이 나서서 '최저임금 인상' 운운했던 것은 정권을 중립적으로 포장해서 노동자의 인식을 혼란스럽게 하고, 노동자 뒤통수를 치기 위함이다. 노동자의 전투태세를 약화시키고 무장해제시키기 위함이다.

 

좋게봐서 순진한 민주노총 지도부는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중간에서 '적정수준'에서 타협하려 했다. 정권과 자본의 대리인들인 '공익위원'에게 '최소한의 양심'을 기대했다가 뒤통수를 맞고,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에게 배신감과 상실감을 토로하는 민주노총의 정세인식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이었는가? 계급의식은 얼마나 바닥을 기고 있는 것인가?

 

이러니 제대로 된 생활임금 투쟁이 될리가 있는가?


최저임금 인상 투쟁도 박근혜 정권 퇴진 투쟁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최저임금 요구를 가로막는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켜야 한다. 노동자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요구조차도 짓밟는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켜야 한다.

 

노동자 민중의 적들에 대한 배신감과 상실감에 사로잡히지 말고 자주적 계급의식과 과학적 정세인식으로 무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