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진실

4.3제주봉기, 여순봉기 60주년 과거사를 둘러싼 계급투쟁의 연장

전국노동자정치협회 2015. 9. 8. 00:59

4.3제주봉기, 여순봉기 60주년 과거사를 둘러싼 계급투쟁의 연장

 

<노동자정치신문>[47호(통합 59호), 2008년 12월)

 

 

 

 

역사 교과서 왜곡, 연장된 계급투쟁

 

E. H. 카아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은 역사에 대한 정확한 표현의 하나이지만 좀 더 본질적인 면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과정이지만, 역사는 사실 역사가만의 몫이 아니며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현재와 미래를 규정하기도 하는 또 다른 한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과 과거의 지나간 사실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지만 그 부단한 상호작용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어떠한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서 상호작용이 이뤄지고 있는지 역사의 법칙을 살펴보아야 한다. 역사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점도 마찬가지로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대화인지를 분석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E. H. 카아가 같은 책에서 역사에 대해 인용한 맑스의 역사가 하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한없는 재부를 지니는 것도, 전투를 하는 것도 역사 자체는 아니다. 모든 것을 행하고 차지하고 싸우고 하는 것은 인간, 즉 현실의 살아 있는 인간이다.”라는 말이 역사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맑스는 문자로 기록된 이래로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했다. 그런데 과거의 역사 자체가 계급투쟁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역사를 해석 또는 분석하는 현재의 역사작업 자체도 치열한 계급투쟁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현실의 살아 있는 인간들의 계급적 이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과거 계급투쟁의 연장선이다. 과거의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우리 곁에 살아서 오늘 우리의 현실을 규정하거나 짓누르고 내일의 생존과 투쟁의 향방을 가르는 중대한 축적된 힘이다. 그래서 역사는 중요한 것이고, 역사를 계급적으로 바라보는 노동자의 역사의식도 중요한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도 현대사 해석을 둘러싸고 우익들과 자본에 맞선 치열한 계급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저들은 사실에 바탕을 두고 당파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넘어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이라면서 역사를 왜곡날조하고 있다. 우익들은 최근에는 역사특강이라는 이름으로 우익들에 의해 날조된 역사를 학생들에게 직접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우익들이 제기하는 이른바 좌편향적교과서라는 것은 양심적이고 민주적인 학자들과 전교조 교사들의 투쟁에 의해 파쇼적 독재정권과 반공사상 하에서 왜곡되고 굴절됐던 부르주아 역사 교과서의 일부분을 수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 역사는 여전히 부르주아 체제가 왜곡하는 역사의 진실을 전면적으로 담고 있지 못할 뿐더러 부르주아 체제와 교육기관의 계급성에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을 뿐이다. 이런 제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역사 교과서가 역사의 총체적 진실을 부분적으로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경련을 비롯한 자본가들과 우익들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왜곡날조를 기도하고 있다.

 

이명박정권과 자본가들,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하는 우익들과 조중동 등 우익적 언론들에서는 역사 교과서의 좌편향을 바로 잡는 것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세우는 것이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왜곡날조를 통해 바로 세우려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얼마 전에 이명박정권은 815일을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광복절이 아니라 1948년 대한민국을 세운 건국일을 중심으로 건국절을 기념하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그런데 이들이 기념하려는 정통성과 국가 정체성으로 세우려고 하는 대한민국 건국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핏빛 살육과 폭압으로 얼룩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

 

 

2008년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의 60주년의 해이면서 제주도 4.3봉기와 여순봉기 60주년의 해이기도 하다. 이승만 정권이 출범하기 고작 4달여 전인 194843일 제주도에서는 미군정과 이승만 도당에 의한 야만적인 학살이 벌어졌다. 제주도 4.3 항쟁은 제국주의 점령군 노릇을 하며 제주민중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미군정과 미군정의 비호 아래 우익들과 일본 제국주의 친일 앞잡이들을 동원하여 남한만의 단독정권을 세우려는 이승만 도당에 맞서 시작되었다. 이 점은 봉기 주도자들의 호소문에도 잘 나와 있다.

 

"시민 동포들이여! 경애하는 부모 형제들이여! '4.3' 오늘은 당신님의 아들 딸 동생이 무기를 들고 일어섰습니다. 매국 단선단정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조국의 통일독립과 완전한 민족해방을 위하여! 당신들의 고난과 불행을 강요하는 미제 식인종과 주구들의 학살만행을 제거하기 위하여! ... 조국과 인민의 부르는 길에 궐기하여야 하겠습니다." (호소문)

 

당시 미군은 한반도 남쪽에 점령군으로 진주하면서 남한에 친미반공국가를 세우려고 했다. 당시 민중들의 절대 다수는 친일파를 척결하고 해방되자마자 착수하여 해방 이듬해인 463월에 지주토지를 몰수하여 소작농들에게 무상분배 조치를 단행한 북조선의 사회주의 체제를 지지했다. 반면에 미군정은 강제 쌀 공출제도를 통해 1년에 두 차례나 잇따른 흉년으로 고통 받고 있던 제주도민들의 식량을 수탈해 갔다. 미군정의 비호 하에서 이승만 도당과 친일파들이 이제는 반공투사가 되어 민중들을 억압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4831일 민중들의 시위에 경찰이 발포하여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에 주민들이 항의하자 경찰은 3.1사건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시위자들을 연행하고 구타와 고문을 저지르는 무자비한 탄압에 들어갔다. 미군정과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에 분노한 제주민중들은 급기야 310일 민간인을 제외하고도 공공기관, 단체에서만 4만 여명 이상이 참여하는 총파업 투쟁을 전개했다.

 

이 투쟁에 대해 미군정은 총파업을 선동하는 좌익의 거점 제주도는 사상의 불순한 붉은섬이라고 악선동을 하고, 당시 경무부장이었던 조병옥은 제주도는 주민의 90% 이상이 빨갱이다. 건국에 방해가 된다면 싹 쓸어버릴 수도 있다며 무시무시한 협박을 했다. 4.3항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무려 2,500명의 제주도민이 끌려갔다. 그 와중에 연행됐던 20대 청년 3명이 경찰의 고문으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마침내 유격대원을 중심으로 43일 무장봉기가 발생하면서 경찰지서와 관공서를 습격했다.

 

이 항쟁은 이후 한국전쟁이 끝나는 시기까지 타오르면서 무려 66개월의 항쟁으로 이어졌다. 이 항쟁의 기간 동안 당시 제주도민 30만 명 중에서 3만에서 5만 혹자는 10만으로 추정하는 제주도민들이 경찰과 군대, 우익 테러조직인 서북청년단에게 무참히 학살됐다. 이들 중에는 무장하지 않은 노인과 아이, 여성들이 무수하게 포함돼 있었다.

 

심지어 일본 제국주의가 만들어 놓은 알뜨르비행장에는 수많은 제주도민들을 학살한 후 그 시신조차 처리를 못하게 처박아놓아 그 시신들이 썩어서 물이 되어 나중에 누가누군지 알지도 못하게 놔두었던 구덩이가 보존되어 있다. 그래서 백조일손(‘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죽어 누구의 시신인지도 모르는 채 같이 무덤도 같고, 제사도 같이 치르니...' '조상이 다른 백여 할아버지가 한날한시에 죽어 뼈가 엉키었으니 그 자손은 하나다'라는 기막히고 기구한 이름의 다름 아니다./양김진웅)이라는 처참한 무덤도 생겼다.

 

제주섬의 항쟁에 대한 초토화 작전으로 4만 여 채의 초가가 불에 타 사라졌다. 194811월 중순부터 4개월간의 초토화 작전때 태워 없애고, 굶겨 없애고, 죽여 없애는 이른바 삼진작전으로 대부분의 인민들이 숨졌고 집이 불태워 졌다. 역사상 유례없는 이 야만적 학살로 아름다운 제주섬의 유채꽃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여순봉기는 4.3항쟁의 한 가운데에서 일어났다. 481019일 밤, 제주봉기를 토벌하기 위해 출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여수 14연대는 친일경찰 타도’, ‘제주도 출동거부’, ‘남북통일을 내걸고 봉기를 일으켰다.

 

이 여순봉기에 대해 출범한지 두 달 밖에 안 되는 이승만정권은 수천 명에서 1만 명의 인민들을 학살했다. 제주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중에는 비무장한 민간인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여수, 순천, 구례 등지에서 민간인들은 두려움에 떨며 수천 명씩 잡혀가며 처형을 당하면서도 항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죽어갔다. 제주에서의 학살로 유채꽃이 핏빛으로 물들었다면 여수순천 등지의 대규모 학살로 인해 지리산 일대의 산수유 열매는 더욱 더 붉게 피로 물들었다.

 

백두산 호랑이로 악명 높은 김종원이 시퍼런 일본도로 사람들의 목을 마구 치고 다니는 공포 분위기 속에서 근 달포동안 진행된 이 가담자 색출 작업은 정말 천인공노할 처절하고 잔인무도한 인간 도살이었습니다. 그때는 날씨도 제법 쌀쌀한 초겨울이었는데 모든 사람들을 팬티만 입힌 알몸으로 밤낮없이 학교 마당에 앉혀놓고 한사람씩 조사실로 불러 들여 장작으로 매타작을 하면서 억지자백을 받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사람이 견뎌내겠습니까? 사람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짐승을 다루는 것 같은 이 조사에서는 무작정 자백을 하라고 후려치는 장작개비에 견디다 못한 사람들은 마지막에는 마치 동물의 마지막을 알리는 것 같은 울부짖음을 토하거나 생똥을 빠락싸면서 까무라쳐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게쓰로 찬물을 끼얹고 다시 조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 이렇게 해서 4개 수용소에서 즉결처분된 사람과 종산국민학교에서 처형된 사람들의 인원수가 당시 계엄사령부의 발표에 의하면 여수 1,200명 순천 1,134명으로 밝혀져 마치 일본군의 남경대학살을 연상케 했던 것입니다.(여순사건의 회고, 작성자 직삼각형)

 

조정래의 장편소설 태백산맥 제1부는 한의 모닥불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다. 소설 태백산맥은 4812월 여순봉기의 처참한 패배와 대대적인 살육을 피해 빨치산 투쟁이 전개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제주와 여순에서의 인민에 대한 대대적인 살육이 한의 모닥불을 피워냈던 것이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한의 모닥불은 꺼지지 않고 있다.

 

얼마 전 KBS 순천방송국에서는 여순사건’ 60년 주년을 맞아 특별기획 잃어버린 기억을 방송했다. 정권의 방송 장악 기도가 서슬 퍼런 가운데 KBS의 기획방송은 대단히 양심적이고 용기 있는 제작자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KBS보도는 여순봉기에 대해서 대단히 중립적인 여순사건이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순봉기의 진실 - 이승만 도당 지배계급의 야수적 만행과 민중들의 학살, 살아남은 사람들이 감내해야 하는 기억의 고통과 연좌제, 잔인한 침묵 강요 - 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승만 정권은 끔찍한 살육을 한 뒤에 민중들의 저항을 막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강력한 반공국가를 구축했다. 이승만정권은 50년 한국내전 당시에는 이른바 보도연맹사건으로 수십만의 민중들을 포함하여 1백만 명에 달하는 민중들을 학살했다.

 

 

반역의 역사를 바로 세우자!

 

이것이 바로 자본가 단체와 조중동 우익 신문, 뉴라이트와 이명박정권이 바로 세우려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이고 정체성이다. 대한민국 자본주의 국가의 정통성과 정체성은 수십만 민중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과 야만으로 시작됐다. 저들은 일본 제국주의 당시에는 제국주의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민중을 배신하는 모리배였다가,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과 이승만 도당의 비호 아래 반공투사로 변신해서 민중들을 학살하는데 앞장서는 학살자이자 민중의 배신자가 되었다. 박정희정권도 이러한 역사의 연장선에서 남한 자본주의의 축적과정에서 노동자와 민중들을 수탈하고 억압했다. 이승만정권이 제정한 국가보안법은 이어지는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노동자계급은 물론이고 민주인사를 때려잡는 지배계급의 무기가 되었고 아직도 살아남아서 노동자투쟁을 압살하고 있다.

 

이러한 반역의 역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지배계급은 이러한 역사의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저들은 역사를 왜곡하여 자신들의 과거를 은폐하려 하고 있다. 이들이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것은 비단 개인들의 죄상뿐만 아니라 남한 자본주의 역사의 무자비한 폭력성과 억압성이다.

 

저들은 자본가 국가의 본질을 조직적으로 은폐하여 지배계급의 지배의 정당성을 다지고, 자본주의 국가의 안정성을 다지려 하는 것이다. 저들은 자신들의 지배의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와 위안부 강제동원등의 야만적 폭압을 은폐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가 근대화를 가져다주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과서 왜곡에 앞장서는 전경련은 기존의 교과서가 자본주의에 부정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며 단독으로 고등학교 경제교과서를 출간해서 배포했다. 여기에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민주주의의 지나친 강조는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내용과 심지어 최저임금제 실시를 반대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렇듯 일본 제국주의와 미국 제국주의의 지배를 옹호하는 것은 바로 독점자본 지배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주4.3봉기와 여순봉기를 비롯한 학살의 역사는 오늘날 교과서 논란을 둘러싼 계급투쟁으로 계속되고 있다. 저들 지배계급은 여전히 반역의 역사를 정통의 역사로 왜곡날조하려 하고 있다. 지배계급의 역사 왜곡날조에 맞서 과거의 역사와 현재와 미래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은 역사의식과 계급의식에 투철한 노동자계급의 몫이다. 이제 노동자의 역사를 세워서 무고한 양민들뿐만 아니라 지배계급의 반역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투철한 계급사상으로 투쟁하다가 이름 없이 죽어간 공산주의자들의 비통한 넋을 달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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